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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평안

읽고 쓰는 삶

by 미칼라책방

나는 고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기엔 엉성하고, 인간은 원래 고독한 거라고 주장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고독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하지만 내가 고독을 즐기는 건 사실이므로 용기를 내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제목에 고독이라는 두 글자를 적고 나니 물 흐르는 것처럼 평안이라는 단어가 뒤따랐다. 고독과 평안이라는 두 단어가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쓰일 때 그 의미가 더 깊어지는 걸 체감한다. 혼자 있을 때 외롭다고 느끼면서도 누구를 찾기보다 내 안으로 더 침잠하며 느껴지는 고요함에 안정감을 느낀다.


어렸을 적에는 외로운 건 나쁘거나 좋지 않은 걸로 알았다. 누가 그렇게 알려준 것 같지는 않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에 사람이 북적이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혼자 있으면 정상보다는 이상으로 여기며,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터부시 한다는 걸 안 뒤로는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친구가 없음을 걱정하고 질책했다. 무리로부터 동떨어질수록 안심하는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아이에게 타인들과 어울리라고 강요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내가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상태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알려준다. 타인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모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외떨어져 내 안의 나를 보듬으며 채우는 스타일이 있다. 보통은 외향과 내향으로 표현하고, 고독은 내향의 영역과 더 어울린다. 나처럼. 하지만 너무 멀리 가면 안 되니 적당하게 멀어지고 유연하게 어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읽고 쓰는 기술을 사용한다. 그건 고급 기술이라 연마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여간 필요한 게 아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고, 떡하니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마냥 읽고 쓰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과연 고급에 이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않지만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확언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이유는 그 행위가 바로 고독과 평안의 굴레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기 전에는 꾹 참았다.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면서 참고 견디다 보면 함께 웃고 즐기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웃고 즐기는 것까지는 어찌어찌할 수 있었다. 밝고 명랑은 원래 성격이 그러니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라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지지 않아 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셔츠 단추를 엇갈려 끼우기 시작해서 마지막 단추는 제 구멍에 끼운 모양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단추와 구멍이 다른 짝꿍에게 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옷섶을 열어 다시 차근차근 끼우면서 단정하게 마무리한다. 하나씩 여며지는 작은 과정들이 고독하지만 매무새를 다듬으며 얻어지는 평안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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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