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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나는 웜한 사람입니다

by 미칼라책방

'쿨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래 제목을 듣고 크게 웃었다. 반가운 웃음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쿨하다는 걸 칭찬으로 여긴다. 뒤끝 없다는 다른 표현도 있으며 쿨하든 뒤끝이 없든 그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처럼 쓰인다. 그러니 당연히 나는 쿨해야 했고, 뒤끝도 싹둑 자른 듯이 보이지 말아야 했다. 허허 웃어넘기거나 괜찮다고 뭐 그런 걸 가지고 신경을 쓰냐며 어깨를 툭툭 치며 돌아섰다. 마치 다 잊은 것처럼. 집으로 돌아와 후... 혼자만의 한숨으로 나의 '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숨겨놓았던 '끝'들을 꺼내 어르고 달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솔직히 쿨은 너무 차갑지 않나? 인간이라면 36.5°C를 유지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괜찮아~ 쿨! 잊었어~ 쿨! 하다가 감기에 걸릴 판이다. 마음속에 담아 두면 병이 난다며 그 자리에서 감정을 쏟아내고 뒤끝 없다는 말로 마무리하는 습성은 어디서 배우는 걸까? 여태껏 그런 학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타고 나는 게 아닐까 싶다. 설마 내가 미워 일부러 그랬겠나 싶기도 하니 본디 쿨하고 뒤끝 없이 태어났나 보다. 그러니 누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른 건데 쿨하지 못한 모습과 감정의 뒤끝을 여러 개 달고 있는 모양이 볼품없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깔끔하게 잊는 걸 못하는 나로서는 뭔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해 쿨은 별로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함께 수영을 하는 A와 단둘이 차를 타게 되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A 씨, 그때 우리 밥 먹으면서 했던 얘기 말이야."

"아, 그거요? 기억하고 계셨어요?"

"어. 나는 A 씨한테 마음이 쓰이더라고. 괜찮았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쿨하지 못해서 그런지 내내 곱씹어지더라고."

"저도 웜한 편이라 조금 생각했어요."

"어머! 웜? 따뜻한 웜?"

"네. 저는 쿨한 편이 못 되거든요."

"하하. 나도. 나도 자칭 웜한 사람이거덩!"


서로 본인은 따뜻한 사람이라며 커밍아웃을 하는 진풍경이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 중에 맞다고 맞다고 몇 번을 계속 같은 말만 했다. 세상 쿨한 사람이 제일 무섭다며 자기 감정을 그 자리에서 다 쏟아내고 돌아서면 나는 어떡하냐고 하는 A의 말에 얼마나 맞장구를 쳤는지 모른다. A와 나같이 감정 처리가 더딘 사람들은 맺고 끊은 과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사숙고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다양한 감정들 사이를 널뛰며 하나하나 갈무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재빠른 편은 아니지만 유순하고 여리다.


지금 내 이마를 짚어 보니 미지근하다. 적정 체온을 유지하고 있으니 나는 쿨이 아니라 웜(Warm)한 인간이 확실하다. 가끔씩 자기도 웜하다며 반가운 인사를 나눌 때마다 삶의 동지를 만난 것 같아 살맛 난다. 쿨하다고 말하는 건 당당한데, 웜하다고 고백하는 건 왜 그렇게 부끄럽고 민망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웜한 사람들이여, 여기 여기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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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