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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할수록 낭패

喜怒哀樂_我 : 성낼 노

by 미칼라책방

취업 전까지는 실패를 모르는 인생이었다. 공부도 그럭저럭 했고, 수능성적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인정받는 대학에 들어갔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바로 학원에 등록했고 그것마저도 필기와 실기 모두 한 번에 합격했다. 당시에는 청춘의 고민으로 모든 것이 어려웠다지만 뒤돌아보면 순차무사(順且無事) 시절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는 무난했다.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의 장애인 복지관이란 복지관은 다 지원했다. 이력서를 쓴 만큼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입이 쓰도록 떨어지고 나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실패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장애인복지관이 아니라 사회복지관으로 눈을 돌렸다. 조금 먼 지역까지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다. 방문하여 접수하면 갸륵하게라도 봐주겠지 싶어 면접하는 차림으로 똑똑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 사회복지관도 아닌 건가? 나는 분명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걸까? 분한 마음과 함께 서러움이 배배 꼬여서 비장함으로 다져졌다. 구인광고를 뒤지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보통 졸업 즈음인 연말연시에 복지사를 구하지만 기관 사정상 뒤늦게 T.O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어디든 자리만 나면 달려갈 태세였다.


찾았다! 장애인복지관이었고, 집에서 30분 거리였다. 운전면허 있는 사람을 우대한단다. 바로 나잖아! 이력서 앞면에 "저 왔습니다!"라고 쓰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뭐든 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면접관에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한 덕분인지 합격했다. 사회재활팀 사회복지사로 출근하는 첫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손에 꽉 움켜쥐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훌륭하게 해내리라는 결심으로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주요 업무는 관내 특수학급 학생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활동하고 유관기관과 협조하여 장애 아동들이 지역사회에서 원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복지관 2층에는 치료실과 주간보호센터 등의 여러 실이 함께 있었는데 내가 맡은 방과 후 교실은 가운데쯤에 있었다. 교구실 바로 옆이었는데 방과 후 교실에서 사용하는 것이니 나더러 정리하고 관리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교실 하나와 교구실 하나는 내 담당이었다. 쓸고 닦고 쓰임새에 따라 분류하고 당장 쓸 것과 나중에 쓸 것을 예상하여 나름의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것이 꼭 필요할까 싶었지만 우선 정리가 먼저였다. 문 앞에 재고 현황표를 걸어두는 것으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다음 날, 주간보호센터 A 사회복지사가 나를 찾아왔다. A는 복지관 개관 멤버라고 하면서 자기를 소개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여기는 자기가 다 관리했다면서 교구실에 있는 것도 모두 본인이 구매했거나 사용하던 거라고 했다. 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A는 분명 다른 팀이었고 나보다 근무 연차는 많으나 그녀에게 뭔가를 지시받을 입장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A가 교구실 안으로 들어서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니, 이거를 꼭 여기에 놔야 해요?"

"그 자리가 나을 것 같아서요."

"이건 사용할 줄 아세요?"

"필요하면 해야죠."

"이건 내가 정말 아끼던 건데..."

"아, 주간보호 것인지 몰랐어요."

"여기 있는 거 다 그런 셈이죠."

"...?"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짚으면서 꼬투리를 잡는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왜 그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혼자 고민하다가 퇴근길에 다른 직원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A가 낮에 이러저러했다고 상황을 설명하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도 함께 풀어놓었다.


"A쌤이 기강 잡으려고."

"엥? 그게 무슨 말이에요?"

"A랑 나랑 같은 과 동기예요. 걔 원래 그래요."

"그럼 전 어떡해요?"

"뭘 어떡해. 그냥 일 하면 되는 거지."

"근데 교구실에 있는 거 주간보호 거예요?"

"글쎄... 주간보호에서 안 쓴다고 사회재활에다가 갖다 놓은 거긴 한데."

"필요해서 산 게 아니라 주간보호에서 안 쓰는 걸 쌓아 놓은 거라고요?"

"응. 몰랐어요?"

"네. 몰랐어요."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정리한 거구나."

"정말 몰랐어요... 그럼 그거 다시 돌려줘야 해요?"

"A가 달래요?"

"아니. 그런 말은 안 했는데 다 자기가 쓰던 거라고는 했어요."

"개관 멤버라는 자부심이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정리하자면 A는 기선제압을 위해 나를 찾았던 것이다. 본인이 쓰던 걸 물려받았으니 감사히 잘 사용하라는 의도였다는 걸 깨달으며 소름이 돋았다. 앞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으며 비장함으로 똘똘 뭉쳤던 내 마음에 상처 입은 자존심까지 얹어 더 크고 강력한 비장함이 되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내가 비록 신입이라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식탁에 앉아 소주를 한 잔 두 잔 마셨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음 날 7시도 안 되어 출근했다. 교구실을 활짝 열고 문발굽을 내렸다. 혼자만의 정리 후 혼자만의 퇴거를 시작했다. 주간보호 것이라고 했던 모든 것을 내놓았다. 주간보호실 문 앞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덩치 큰 텔레비전부터 자잘한 색종이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나의 비장함을 꺼냈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면서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쳐다보았지만 2층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답하지도 않았다. 다만 신입 사회복지사가 끙끙 거리며 짐을 나르는 소리만 들렸을 뿐.


"아니, 이경혜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야?"

"팀장님... 흑흑."


누군가 사회재활팀 팀장님에게 알렸나 보다. 신입 사회복지사가 일을 냈다고. 팀장님은 2층으로 후다닥 내려와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설명 대신 눈물이 먼저 나왔다. 나도 팀장님도 주변에 있던 직원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섣부른 비장함은 눈물로 막을 내리는 낭패로 마무리되었다.


팀장님은 상의도 없이 단 하루 만에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한 나를 질책하셨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팀과 팀이 부딪힐 수 있는 사안이므로 위에 보고를 하는 게 먼저였는데 내 마음 다친 것만 생각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주먹을 부르르 떨며 비장을 다짐하느라 보고고 뭐고 돌아볼 생각도 못했다. 미숙하고 성급했다. 다시는 이렇게 일처리 하면 안 된다는 팀장님의 훈계에 깊이 반성했다.


그 사건 뒤로 비장한 각오는 되도록 멀리하고 있다. 나는 비장할수록 낭패를 보는 스타일이다. 점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점 뒤에 배경도 있고 옆의 점들과 어우러진 선과 면과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근차근 어우러지며 나아가는 것이 내 적성에 맞다.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말자. 어쩌면 소 주 두 잔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내가 두 잔이나 마셨으니 올바른 결정을 했을 리가 없다. 성을 낼수록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