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치유의 글을 쓰는 나 02
별일 없이 생각한 대로 일이 흘러갈 때 나는 내 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잘남으로 이렇게 잘 풀리는구나 싶어 스스로를 대단하고 대견스럽게 여겼다. 어쭙잖은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깜빡이를 켜고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사거리는 한산했다. 왼손은 핸들에, 오른손은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집으려고 하는 순간, 쾅!
삐리링 삐리링... 똑딱똑딱 똑딱똑딱 삐삐삐
내 차의 온갖 경고음이 울려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고개를 돌리려고 한 순간 아악... 뒷덜미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수석에 있던 내 가방은 아래로 내팽개쳐져 있었고 좌회전을 기다리던 내 차는 나를 태우고 앞으로 날아와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무섭고 무서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지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남편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전화가 없다. 거치대에 있던 전화가 어딘가로 떨어진 것 같았다. 목은 돌아가지 않지만 허리는 숙여졌다. 조수석 발치 어디선가 전화기 소리가 나는데 손에 닿질 않았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려 발을 딛는 순간 발바닥을 수백 개의 바늘이 찔러댔다. 이번에는 아파서 울었다.
내 차를 빙 돌아가려는데 뒷부분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걸 발견했다. 아... 나 교통사고 당했구나. 내 차 어떡하지? 우선 전화부터 하자. 조수석 문을 열고 가방 밑에 깔린 전화기를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다시 했다. 안 받는다. 여러 번 했지만 안 받는다.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엉엉 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무섭고 아팠다.
선정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엉~ 엉~."
"경혜씨, 무슨 일이에요?"
"엉~ 엉~. 저 사고 났어요."
"괜찮아요?"
"엉~ 엉~."
"우선 내가 사고접수할게요. 전화기 꼭 들고 있어요."
"엉~ 엉~"
선정 언니는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고 관리해 주는 분인데 십수 년 인연으로 늘 믿고 의지하는 사이다. 역시 조금 있다가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우선 119에 전화하세요. 저도 가고 있습니다."
"네, 엉~ 엉~"
그 사이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전화를 안 받는 횟수만큼 두려움이 증폭되어 덜덜 떨었다. 119와 보험사와 렉카와 경찰과 상대방... 많은 이들이 왔고 나는 구급차 베드에 끈으로 묶여 고정되었다.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된 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선정 언니는 보험사를 출동시켜 나를 보호해 주었고,
젊은 구급대원은 옷을 입혀주고 보호대를 착용하도록 돕고 손을 잡아주며 안심하라고 위로해 주었으며,
남편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시내버스는 버스공제조합이라는 곳에서 사고 업무를 대리하는데 말 꺼내기 싫을 정도로 별로였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있으며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합의고 뭐고 심사숙고할 수가 없을 만큼 끔찍하다. 경찰도 공제조합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수순만을 강조할 뿐 나를 어루만져 주는 이는 따로 있었다.
많이 억울했겠다고 공감해 주는 이,
얼마나 놀랐을까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괜찮냐고 물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던 이,
이야기 꺼내기 어려우면 하지 말라며 나를 끌어당겨 안아주던 이...
눈물이 났다. 사고 당시 흘렸던 눈물은 두려움과 아픔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해소와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혼자 잘났다고 뻐기던 인생은 조그만 방구석이었을 뿐이다. 그 방구석에 불이 꺼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얼어붙었다. 조금씩 햇볕의 기운이 스며들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주던 이가 기억난다. 그녀의 보살핌은 특히 감사하다.
예기치 않은 순간 내 인생에 불이 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었다. 그것이 제일 컸다. 하지만 이내 나를 향해 시나브로 다가오는 따뜻한 기운과 손길에 웃음을 되찾고 슬슬 기운을 차리고 있다. 볕뉘가 있음으로 감사한 인생이다.
<볕뉘>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