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치유의 글을 쓰는 나 03
나의 책 [당신 덕분, 호주]는 여행 에세이다. 여러 번 고백했지만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그냥 내 일상에서 변함없이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기 때문이다. 여행 안 좋아하는 사람이 쓴 여행 책이라니...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임수진 작가의 에세이클럽이었다. 한 주에 두 꼭지씩 쓰며 삶에 대한 소회를 에세이로 풀어내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었다. 가능하면 일관된 주제 안에서 쓰고 싶었고, 그러려면 시점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으며, 마침 호주 여행 사진을 정리하는 중이었으므로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글의 소재는 호주 여행, 주제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여행이었다.
글쓰기가 가진 많은 장점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자각기능이다. 호주 여행기를 쓰면서 알았다. 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일정한 틀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지라 내 생활 반경을 벗어나는 자체가 힘든 것일 뿐 여행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이었다. 쓰는 과정 중에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알아내고, 낯선 여행지에서 그것들을 실행할 때의 짜릿함은 내가 살아있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수영과 달리기를 하고, 시간을 글로 기록하며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건 여기서나 거기서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므로 나는 여행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낯설어하는 사람이었다.
일 년 열두 달을 내 자리에서 언제나 한결 같이 지켜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더 어렵다. 나는 차라리 여기 이곳에서 또바기 쓰며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떠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운동복과 필기도구를 챙겨 훌쩍 바람이 온 곳으로 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또바기 : 언제나 한결 같이 꼭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