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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r 07. 2021

재택근무가 밝혀낸 수건 범인

Go, Back - 11

보통 욕실에는 수건이 걸려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욕실 안에 말고 문틀에 누군가 수건을 따로 걸어 놓았다. 수건의 세로 절반이 되는 부분을 세탁소 옷걸이에 걸쳐 널어놓았다. 내가 욕실에 드나들 때마다 정수리가 살짝살짝 스쳐 약간 신경 쓰이고 있었다.

수건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싶기도 했지만 주인을 추궁하려고 한 날에는 수건이 걸려 있지 않았다. 자연스레 잊혔다가 내 정수리를 스치며 수건을 다시 나타났다. 잊을만하면 걸렸다가 스리슬쩍 잊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크게 묻는다.


따로 걸려 있는 수건 누가 썼어?


드디어 수건의 소유권이 밝혀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남편은 굉장히 깔끔한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누가 썼는데... 물기가 있는데..."라고 말하는 남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본인의 수건을 사용한 것이 마뜩잖았나 보다. 

온라인 수업을 하던 막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문틀에 걸려 있던 거?"라고 물었다. 즉시 남편과 막내의 대담이 성사되었다. 


"아빠가 이거 따로 걸어 놨는데."

"내가 걸어 놨는데?"


부녀지간에 수건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어제 걸어 놓은 거야."

"어쩐지 어제 걸려 있어서 나는 내가 까먹은 줄 알았어."


의외로 소유권은 빨리 정리되었지만 둘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이거 막내 네가 계속 닦았니?"

"응. 내 발수건이야."

"뭐? 이거 내 얼굴 닦는 건데?"

"아빠~ 이거 내 발 전용인데?"

"악!!! 나는 계속 얼굴 닦았단 말이야!!!"


굉장히 깔끔했던 나의 남편은 막내의 발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실은 막내도 깔끔을 떠는 편이다. 특히 발바닥에. 욕실 매트도 먼지가 많다고 잘 밟지 않는 아이다. 

각자의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 수건 하나로 얼굴과 발바닥을 번갈아 닦은 부녀도 결국 웃고 말았다. 이렇게 수건 사건의 전말은 밝혀졌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아니었다면 씻는 시간이 절대 겹칠 수 없는 두 사람이었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집에 있어서 생긴 장점이라고 여겨졌다. 덕분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아직도 걸려 있는 수건을 보며 누구의 얼굴을 닦았을지, 아님 누구의 발바닥을 닦았을지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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