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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라는 아이

사랑스런 아이

어느 날인가 수업 중에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공부방이죠.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인데요.

한글도 잘 모르고 수학도 많이 어려워해도, 다닐 수 있나요?"

나는 순간 고민을 하게 되었다.

'초1이면 50분 동안 집중하기 힘들 텐데, 더구나 공부가 어려우면 더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내 입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내일 1시에 상담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뭔가에 씐 듯 약속을 하게 되었다.


약속을 하고 나서 많은 번뇌와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7살에 처음 만나, 지금은 모범생이 된 원석이가 떠올랐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으시니, 보내시는 거겠지.'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약속시간이 되자, 엄마가 오셨다.

굉장히 어려 보여서 깜짝 놀랐다.


나는 항상 그렇듯 "공부방에 보내시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머뭇거리시던 엄마는 약간 주눅이 든 모습으로 말씀을 하셨다.


"저희 아이가 굉장히 소심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예요. 상처도 잘 받고 눈물도 많아요.

그래서 공부방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에요. 그리고 학교수업에

따라갈 정도로 수학과 한글을 했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것은 바라지는 않고요."

고해성사를 하 듯 차근차근 침착하게 말씀을 하셨다.

얘기를 듣는 동안,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저희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지우가 자신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니기로 하였다.


다음날 1시 30분쯤에 벨이 울렸다.

현관문을 여니, 엄마 뒤에 눈만 내놓고 꽁꽁 숨어 있는 정말 자그마한 인형 같이 생긴 지우가 보였다.

호기심과 겁에 질린 듯한 눈빛은 애처롭게 빛나고 있었다.

지우의 낯선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서 미소 띤 얼굴과 친절한 말투로 "지우아, 안녕. 만나서 반가워. 다 괜찮으니까 들어와."라고 말했다.

엄마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던 지우는 쭈뼛쭈뼛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지우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부터 막막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어떻게 지우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어떻게 수업을 시작하지?'

'까짓것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시작해 보자.'

"지우야, 가, 나, 다, 라... 알고 있어?"

지우는 너무나 쉬운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쉬운데 할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답이야.'


감이 잡힌 수업분위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나는 칭찬과 인정을 융다폭격하 듯, 쏟아부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지우의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자, 지우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우는 아이돌 IVE의 장원영보다 훨씬 더 예뻤다.

22년 공부방을 하면서, 그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보았다.

지우의 웃음은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그렇게 지우와의 행복한 첫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지우는 하루하루 한글과 수학실력이 늘어만 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지우가 누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터프한 누나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지우는 누나와 수업을 하게 되었다.

참 헛헛하고 서운했다.

그런 감정은 티를 낼 수 없기에 의연하게 수업을 했다.

감사하게도 지우는 누나랑 수업을 하는 중간중간에 나에게 와서 애교를 부리고 갔다.

그 마음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비타민도 그런 비타민이 없었다.

벌써부터 언젠가 있을 지우와의 이별이 허전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참, 매력이 많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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