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매수자님. 매도자입니다.
어느덧 계약한 지 한 달이 넘었네요.
지난 계약일 이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우연히 뵈었었죠.
부동산 거래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편한 대화가 오갔을 텐데 그날은 왠지 조금 어렵더라구요.
매수자분께서도 그러셨겠죠?
저는 두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과, 부동산 투자라는 욕망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올해 1월 큰맘 먹고 집을 내놓았어요.
무려 10개월을 기다리고 기다려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해요.
아마 좋은 새 주인을 만나고 싶어서 오래 기다리게 했나 봐요.
저는 5년 전에 이 집을 사고 전체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 들어왔는데, 어느 한 곳도 제 손길과 결정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답니다.
디자인이나 컬러 취향이 서로 다를 순 있지만,
집을 아주 아끼고 소중히 대했다는 것만큼은 자신 있어요.
정말 애정하는 집입니다.
저는 신혼집에 전세로 지내다가 결혼 4년 만에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집을 사기로 했어요.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옛날 어르신들 마음처럼 집은 하나 있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지 않나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집을 본 첫날 저는 바로 계약을 했는데,
그때 남편은 끊었던 담배를 한대 피우더라구요.
제 결정이 옳은 건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집에 와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우며 저흰 세상 모든 걸 얻었어요.
덤으로 집값도 꽤 올랐답니다.
그래서인지 매매계약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헛헛하고 집에게 미안하기도 하더라구요.
저희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내준 집인데 이렇게 쉽게 떠날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이 집을 너무 그리워하면 어떡하나.
이상하게 슬픈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도 있었어요.
어느 날 남편에게 저의 이 마음을 이야기하며,
나중에 아이들 다 독립시키고 나면 다시 이사오자고 했더니 주차가 어려워서 싫대요 ㅎㅎ
저보단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덜한가 봅니다.
매수자님, 아이 하나를 키우며 이제는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희 집을 사셨다지요.
매수자님 인생에도 이 집이 좋은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수자님의 아이가 이 집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매수자님 가족에게 많은 추억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저는 결국 집을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매정히 떠나가지만, 매수자님께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첫 집이 되시길 바라요.
제 집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아껴주시길 부탁드려요.
집아, 꼭 잘 있어. 언젠가 널 다시 보러 올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