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중간에서 업무를 돌아보기...인데 그냥 상담이었나?
(2021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2021년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다. 인사팀에서도 메일이 왔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막내의 반란(?)도 있었고 해서 팀장님께선 팀원들 각자 면담을 좀 하자고 누누이 말해왔었다. 하지만 면담이라는 게 업무보다 우선순위가 아니다 보니 계속 밀리고 밀렸다. 팀장님이 면담을 하겠다고 한지 한 두어 달이 지나고 나서야 진짜로 날짜를 잡고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오전엔 막내사원과의 면담이 있었고 오후엔 나와의 면담이 있었다. 원래는 오후에 아무 때나 시간 될 때 하자고 하셔서 점심 먹고 와서 면담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생각하려고 했는데 팀장님이 1시가 지나자마자 바로 시간 되냐고 물어보신다. 이도 닦고 와야 했고 생각할 시간도 벌 겸 10분 후에 하자고 말씀드렸다. 이를 닦으러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전쯤, 팀장님이 면담을 하자고 하시면서 팀원들에게 아래 질문에 대해 각자 생각해 보고 회신을 달라고 했었다. 이래 봬도 사회생활 10년 차인데 추가로 무슨 일이 하고 싶냐는 팀장님의 질문에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때는 정말로 도저히 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게 쓴 건데 점점 면담이 다가올수록 내가 미쳤구나, 아무리 팀장님을 편하게 생각해도 그렇지 너무 성의 없게 답변을 했다고 생각했다.
면담을 하러 회의실에 들어가서 답변을 그따위로 써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팀장님은 쿨하게 모른 걸 모른다고 썼으니까 상담하기는 쉬울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하셨다. 어쨌든 오늘 면담의 가장 큰 요지는 이거였다.
내년에
나와 내 동료가 진급대상자라는 것.
그러니 올해 성과를 보여야만 즉 진급 대상자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야 진급에 대한 당위성이 생긴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여태까지 팀장님께 주 35일제 근무 같이 워라밸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꺼내왔기에 팀장님은 내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나를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최대한 개인 삶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나의 그런 삶의 태도가 무조건 일을 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일을 해야 할 때는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나와 동료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건 전부터 나도 느끼고 있는 거지만 좀 껄끄럽고 예민한 부분인지라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 하지만...
내가 동료보다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
동료와 나는 나이도 동갑이고 연차도 업무경력도 비슷하다. 팀장님은 팀장의 직무가 아래 직원들을 잘 이끄는 것이고 특히나 올해 목표는 둘 다 진급을 무사히 잘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진급대상으로 둘 중 한 명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건 그 동료한테도 반대로 나한테 말한 것처럼 똑같이 말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명 죄수의 딜레마 스킬. 공범인 두 명의 죄수를 서로 마주치지 못하게 해 놓고는 각각 상대방이 이미 비밀을 말했으니 너도 불어라, 하는 식으로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내는 것과 같이 조직에서는 이 방법을 이용해 경쟁관계에 있는 각각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러면서 팀장님은 나와 그 동료에게 일을 디렉팅 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동료는 딱 시킨 만큼만, 시킨 대로만 일을 해온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와'라고 하면 그것만큼은 잘 해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세히 디렉팅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이 일을 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 등 큰 그림만 설명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설명을 듣고 대체적으로 팀장님이 원하는 자료를 만들어온다고 했다. 그게 바로 우리 둘의 차이이며 앞으로는 그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우리 둘을 대하는 게 다르다 느끼고는 있었지만 팀장님 입으로 그 말을 들으니 팀장님이 확실히 다르게 대하고 있었구나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지금은 이직했지만 팀장님 오시기 전에 같이 일하던 상사도 또 지금 같은 회사에 계신 CFO도(이 분이 옛날에 팀장이었다)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적은 있었다. 간접적으로 나에게 동료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있었고 심지어 이직한 상사는 나에게 스카우트 제의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엄청 똑똑하거나 회계나 세무지식에 유별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같이 일을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좋게 봐주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팀장님은 둘 다 최대한 진급시키는 게 목표지만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를 밀겠다고 하셨다.
<중간 면담을 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