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의 기록 : 여의도에 대한 추억 주절주절
나는 여의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 있었지만 2019년에 강남으로 이전했다. 그에 맞춘 건 아니었지만 우리 집도 여러 사정으로 2020년에 회사가 있던 영등포구에서 강남 근방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레 이 동네에는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도 백화점, 공원, 카페 등 필요한 시설은 다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 이사 갈 때 스스로 약속한 것처럼 여의도에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겐 여의도를 떠올리면 마음 한 편에 찌르르한 게 있다.
7월의 서울탐방은 내가 좋아하는 여의도, 그중에서도 여의도공원이다. 한낮엔 더우니까 여름밤의 여의도공원을 걸어보기로 했다. 밤의 여의도공원은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나 기분이 다운될 때 그래서 곧바로 집에 가기 싫을 때 들르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잠깐 들러서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기분이 풀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기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 대히트를 친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작품 중 <언어의 정원>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상영시간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작품인데 도쿄 시내가 배경이고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도쿄의 신주쿠 교엔이다)이다. 그리고 영화의 시점이 장마기간이라 그런지 영화에 비 내리는 장면이 엄청 나온다. 그러니까 7월 중순, 장마가 한창인 지금과 영화의 배경이 비슷한 시점이라는 거다.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유키노가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진짜 맥주를 너무 맛있게(!) 마신다. 그동안 일본여행은 여러 번 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다. 가보지 ‘못’했다기보다는 일부러 가지 ‘않았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러 번 일본여행을 계획할 때 굳이 수도인 도쿄를 여행지로 고르지 않은 건 대도시이다 보니 서울과 같이 조금은 뻔한 곳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수도니까 분명 언젠가 가긴 갈 거였다. 그래서 그 언젠가 도쿄에 가게 된다면 영화의 배경이 된 그곳에 가서 나도 꼭 맥주를 마셔야지란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절로 떠올랐다. 그걸 의도하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런데 나 같은 생각을 할 사람이 많을 거란 걸 예상했는지 영화 말미 엔딩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해당 장소에서 술 먹는 건 금지’라는 안내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사는 나에게 유키노의 그것과 같은 장소는 서울의 여의도공원에 해당한다. 당장 일본에 갈 수 없으니 도심 한가운데의 공원, 내가 좋아하는 여의도공원에서 맥주를 마시자!! 캬아!! 하고는 영화를 본 다음 해인 2014년, 여의도공원에 그걸 실행하러 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년 전만 해도 분명 공원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팔았던 거 같은데 술 종류가 없는 거다. 이게 재고가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예 술을 안 갖다 놓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물어보니까 이제는 술을 안 판다고 했다. 법이 바뀐 건지 아님 술 먹고 깽판 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술 먹으면 얌전히 조용히 먹고 가야지 왜들 그래. 그러다 이제 한강에서 술 먹는 것도 금지된다? 잘해줄 때 자제하자구요들.
그래서 편의점에서 파는 무알콜 맥주라도 사가지고 나와 기분을 내볼까 해서 하나 사가지고 나왔다. 요즘은 무알콜 맥주도 많이 발전해서 먹을만한데 2014년 당시에는 진짜 더럽게 맛이 없었다. 그렇게 무알콜 맥주 한 캔 하고 씁쓸하게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장마기간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장마가 소강상태인 마침 오늘이 그런 날이다.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가 퍼부어야 하겠지만 현실의 나는 비가 퍼붓는데 야외를 걸어 다니기 싫다. 비 오는 날은 그저 집에서 비 오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빗소리를 듣는 게 제격이다.
그래서 영화처럼 비가 오지는 않지만 비슷한 계절, 장마기간인 한여름에 유키노처럼 고민을 가진 채로 공원을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쯤 슬슬 걷다가 어둠이 내려앉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지만 어둠이 떨어지기 전인 낮에 여의도에 도착했으니 밤이 될 때까지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내가 혼자 돌아다닐 때 찾아가는 곳은 가능하면 북카페다. 나는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일반 카페의 소음은 내용은 물론이고 데시벨 통제가 불가능해서 나의 귀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래도 북카페는 소음의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목소리가 크지 않고 보기 드물게 책 읽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노트북으로 개인작업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괜찮다.
여름이라 낮이 참 길다. 저녁 8시가 넘어 어둑어둑해지자 카페에서 짐을 챙겨 나온다. 밖에 나오자마자 습기를 가득 머금은 여름공기가 훅 풍겨온다. 밤인데도 한낮의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다. 오늘 있던 카페에서 여의도공원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다.
<서울탐방 제17탄 : 여름밤의 여의도공원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