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결과로 설명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어느 하루 끝에서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오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담당 회계사가 팀장님께 전화를 했다. 우리가 과세관청에 낸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법인세 환급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본세 10억 원대에 예상치도 못했던 지방소득세까지 추가로 환급받게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고한 나를 위해 박수를 쳤다.
팀장님과 막내사원과의 해결되지 않은 사이는 여전히 찝찝한 채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그 전화를 받기 전, 팀장님이 달달한 게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먹은 케이크 때문에 이미 기분이 좋아져 있어서였을까?
결과가 좋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동안 잘 풀리지 않았던 일이었다. 몇 달간 시간과 노력을 바쳤던 일이 좋은 결과로 돌아와서 그런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기분 좋게 퇴근을 했다. 비록 업무 때문에 한 시간을 늦게 퇴근하는 것일지라도. 하지만 평소대로 정시에 퇴근했더라면 내 퇴근시각보다 늦게 전화로 걸려온 이 좋은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와 과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이 둘은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결과가 중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정이 없다면 결과가 없다. 그것이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그리고 당장은 나쁜 결과라 여길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한다. 경정청구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게 마무리되어 좋았지만 한편으론 팀장님과 막내사원의 관계가, 이런 과정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진다.
퇴근은 했지만 바로 집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깁스도 풀어서 두 다리의 자유도 찾았고 어제부터 진통제를 먹어서 다리도 안 아프겠다 해서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나에게 주는 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니까. 이제는 깁스 없이 두 다리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지하철을 타고 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타면 내려서 서점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고 해서 그나마 서점 가까운 곳에 내려주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지하철 통로와 연결되어 있는 회사 건물 지하로 나가지 않고 1층으로 나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갑다. 패딩의 모자를 뒤집어쓴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는 지금은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이내*의 시간이다. 도대체 언제쯤 낮이 길어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 동지가 지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아침 출근길에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어둡다.
(이내* :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밴드 페퍼톤스의 멤버 재평오빠가 첫째 아이 출산소식을 알리면서 '이내'라는 이름을 붙였다길래 그때부터 기억에 남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짙은 푸른빛 하늘에, 지평선 근처에서 막 솟아오른 듯한, 하늘 한가운데가 아니라 낮은 건물 옥상에 올라서면 잡힐 듯이 밝은 보름달이 아주 낮게 떠있었다. 보름달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내가 이미 좋은 마음인 데다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딱 들었을 때 보름달과 눈이 마주쳐서 기분이 더더욱 좋았다. 하늘마저 나에게 선물을 준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