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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02. 2024

서울탐방 제17탄 : 여름밤의 여의도공원 (하)

2023년 7월의 기록 :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서울탐방 제17탄 : 여름밤의 여의도공원 (상)>에서 이어집니다.





      북카페를 나와 여의도공원으로 향하는 길. 아무리 칠월이어도 그래도 밤이니까 조금 시원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게다가 이 북카페가 있는 구역은 내가 여의도에 근무하던 당시에도 잘 다니던 곳이 아닌 데다 어두워져서 그런지 길을 헷갈리는 바람에 한 골목 잘못 들어갔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길을 찾아 나왔다.


      그리고 한참 걸어 공원 앞 여의도 환승센터에 도착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꽤나 긴 50초라는 시간부터 시작해 깜빡이면서 점점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고 나는 과거에 걷던 그 길을 자연스럽게 건너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편한 차림으로 운동 나온 여의도 주민이라기보다는 나처럼 볼 일이나 약속이 있어서 여의도에 왔거나 혹은 여의도에서 일하는데 야근을 위해 저녁 먹고 잠시 산책 나온 듯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의도는 평일에는 직장인들이 많고 주말에는 직장인들은 없지만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외지인들이 많다. 내가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여의도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건 여의도는 항상 거기 사는 주민보다는 왔다가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 보인다는 사실.


내가 근무했던 건물 3곳이 모두 보이는 위치에서. (@여의도공원)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서 나만 아는, 내가 근무했던 건물 세 개가 모두 보이는 위치에 섰다. 기분이 남다르다.


      2009년에 여의도로 첫 출근을 했고 지금이 2023년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그동안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많이 바뀌었다. 2009년만 해도 IFC가 없었는데 2011년 완공되어서 사무실이 그쪽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내가 여의도를 떠난 뒤로는 더현대와 여의도 우체국 건물 리모델링, 사학연금회관 건물 리모델링 등이 완료되어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틀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어제 오전에는 대표님과 팀장직 보임에 관한 면담이 있었다. 사실 그전에 어느 정도 컨펌이 다 된 상황이었기에 면담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대표님과 이렇다 할 친분을 쌓았다던가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눈 상황이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 자리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긴 했다. 간단한 면담이 끝났고 오후에는 전사에 인사발령 공지가 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오후, 나는 다른 회사에 1차 면접을 보기 위해 반차를 쓰는 스릴 넘치는 짓을 했다. 올해 1월부터 이직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동안 면접이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내가 잘 안다. 왜냐면 내가 하던 업무를 지원한 게 아니라 약간 틀어서 지원을 했더니 찔러보기식 연락은 많이 왔지만 면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3개월이 지나고 나니 찔러보기식 연락조차도 뜸해졌다.


      그래서 이직 관련 연락이 오는 건 이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7월 초에 연락 하나를 받게 되었고 그게 면접까지 연결된 것이다. 하필이면 팀장 보임에 대해 회사 내부 검토를 하고 있는 이 와중에 말이다. 사람 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그렇게 바랄 때는 하나도 안 되더니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또 이런 시기에 맞춘 듯이 연락이 오다니.


      그래서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면접 연락이 온 게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미 회사에는 팀장을 해보겠다고 말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만약 내가 여기서 1차 면접에 합격하고(대체로 경력직에서 1차 면접에 합격했다는 것은 꽤 긍정적인 신호로 최종 합격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2차 면접까지 합격해서 최종적으로 이직을 결정하게 된다면? 대략 그 시기를 가늠해 봤을 때가 팀장을 달고 한 달 정도 뒤쯤이었다.


      그러면 나는 회사에는 실컷 팀장 하겠다고 해서 팀장 달아줬더니 한 달도 안 돼서 갑자기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런데다 새로 가는 곳은 팀장이 아닌 팀원 직급이기 때문에 거기서도 팀장 한다는 애가 왜 우리 회사에 팀원으로 온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거고. 잘못하다간 나의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꼬일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면접을 보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이직 준비를 하면서 '적어도 면접 한 번은 봐보자'라는 나와의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기회가 왔으니 1차 면접을 보고 혹시 합격하더라도 내가 거절을 하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알아서 그들이 나를 불합격시켜 줄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이 모든 걸 감행하게 된 거다.


      어제 면접을 봤고 합격자 발표는 며칠 걸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주말은 지나고 연락이 오겠지 했는데 오늘 오후 북카페에 있을 때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연락이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헤드헌터는 전화를 받자마자 "좋은 소식은 아닌데요", 하면서 용건부터 말했다. 아아, 그렇군요.


      이미 그 말에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여러 명 면접을 봤는데 더 적합한 지원자가 있어서 나는 1차 면접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헤드헌터에게는 회사 내부의 상황이 이렇게 돼서 팀장직을 제의받아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얘기는 해뒀었다. 이렇게 돼서 아쉽지만 일단 내부에서 기회가 있으니 잘해보시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자, 이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면접에서 비록 탈락했지만 면접 한 번은 봐보자는 나와의 약속은 지켰다. 그거면 됐지. 이직 면접엔 불합격했지만 회사 내 팀장 보직은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7월의 서울탐방 날짜를 미리 정해뒀기 때문에 오늘 여의도공원에 와서 저녁에 산책할 계획은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제만 해도 여러 가지가 중첩된 지금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분명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이것저것 변수와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머리 아픈 산책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일찍 걸려온 헤드헌터의 전화 한 방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나는 다음 주부터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제 이직은 시도하지 않을 거다. 팀장직을 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그만둘 거다. 원래부터 재무팀 팀장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보통 회계/재무팀 면접에 들어가면 이런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특히 신입사원일 때. (다른 직군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10년 후,
당신의 목표는 뭔가요?


     대부분의 회계/재무 취업 준비생들은 팀장이 되겠다는 둥 CFO가 되겠다는 류의 대답을 한다. 같은 업무를 십 년쯤 해서 전문성을 쌓는다고 했을 때 회계/재무 쪽에서 가장 잘 풀린다 하면 CFO가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나는 참 용감하게도(?) 십여 년 전부터 면접에서 들었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절대 CFO가 되겠다는 답을 한 적이 없다.


      왜냐면 CFO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팀장이 되겠다는 생각조차도. 그때부터 본능적으로 회계/재무일을 죽을 만큼(?) 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사람을 리딩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이런 대답을 했다.


면접관) 10년 후, 당신의 목표는 뭔가요?

나) 저희 부모님께서는...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도 사회생활을 젊었을 때부터 하셨고 지금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저도 어떤 일이, 어떤 업무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사회생활을' 오래 할 생각입니다.

다만 10년 뒤는 사실 너무 아득해서 가늠이 되질 않아요. 그래서 CFO가 된다, 이런 것보단 일단 눈앞의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팀 내의 업무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무언가 보일 거 같아요.


     나는 이제 또 다른 발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에어팟 밖으로 매미는 맹렬하게 울어대고 있다. 나는 선택을 했고 이제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은 기꺼이 싸워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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