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의 교차로에서
역사는 종종 반복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쿠키디데스(Thucydides)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기록하며, "기존 강대국이 몰락할까 두려워하고,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려 할 때 전쟁은 불가피해진다"는 통찰을 남겼다.
이는 훗날 "쿠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라 불리며, 국제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함정은 단순한 고대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대립, 냉전기의 미국과 소련의 경쟁, 그리고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갈등까지.
역사는 강대국의 부상과 기존 패권국의 불안이 충돌할 때, 긴장과 전쟁으로 치닫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이 거의 본능처럼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쿠키디데스의 함정"은 숙명일까? 반드시 전쟁으로 귀결되는 운명일까? 많은 학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함정은 함정일 뿐, 반드시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20세기 초 패권의 교체기를 비교적 평화적으로 넘겼다. 갈등의 뿌리는 깊었지만, 외교적 타협과 제도적 장치가 전면전을 피하게 했다. 이처럼 함정을 의식하고 노력할 때, 전쟁은 선택이 아닌 회피 가능한 위험으로 바뀐다.
오늘날 국제 정세를 보면 쿠키디데스의 함정은 더 이상 학문적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미•중 간의 무역 갈등, 군사적 경쟁, 기술 패권 다툼은 고대의 경구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동시에,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두 나라의 충돌은 단순한 지역적 전쟁이 아니라 전 지구적 파급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칼럼니스트의 눈으로 본다면, 쿠키디데스의 함정은 단지 국가 간의 문제를 넘어, 인간 사회의 보편적 심리를 보여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조직 내에서도, 기업 간에도, 심지어 개인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기득권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고, 신흥 세력은 그 자리를 넘보며 도전한다.
이때 서로가 두려움과 불신으로만 반응한다면 갈등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대화와 공존의 지혜를 발휘할 때, 경쟁은 파괴가 아닌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결국 "쿠키디데스의 함정"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두려움으로 반영할 것인가, 아니면 지혜로 길을 낼 것인가?"
역사의 함정은 늘 존재하지만, 그 함정을 넘어서는 선택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