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보고 싶은 대로만 볼까?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것이 편견의 시작이다.
편견은 경험에서 비롯된 듯 보이지만, 대부분은 경험의 일부만을 확대 해석한 결과이다.
우리는 몇 번의 사례를 근거로 전체를 단정하고, 한두 번의 실패로 전체를 부정한다. 그렇게 형성된 인식은 쉽게 굳어지고, 새로운 사실 앞에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편견의 무서움은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스며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합리적이라고 스스로를 믿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판단하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타인을 재단한다.
어떤 사람의 외모나 말투, 출신 지역, 직업만으로 그 사람의 성품이나 능력을 추정해 버린다.
일단 그런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 이후의 모든 행동은 그 편견을 강화하는 근거로만 읽히게 된다. 편견은 그렇게 "닫힌 시선"을 만든다.
이 문제는 단지 개인의 성향에 그치지 않는다. 편견은 사회의 제도와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 차별을 낳고, 배제를 정당화한다.
"여성은 감성 감정적이다", "노인은 보수적이다", "외국인은 위험하다"는 식의 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가는가.
이런 인식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편견이 반복되면 그것은 믿음이 되고, 결국 사회의 신뢰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편견을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의지해 온 인식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혹시 내가 편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시선의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사람을 한 명의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려는 태도, 그 작은 성찰이 사회를 변화시킨다. 진정한 지성은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은 그보다 더 다양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향해 닫힌 문을 여는 일 - 그 용기야말로 편견을 이기는 첫걸음이다.
편견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