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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꾼다면 한 번쯤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김중식 시인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의 한 구절입니다. 이 시편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비춥니다. 뱀이 제 꼬리를 무는 것처럼, 어디를 향해 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반복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삶.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은 불안하지만, 그 짧은 경험이야말로 삶에 빛을 남긴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별똥별처럼 번쩍이는 자유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람에 맞춰 눈을 뜨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비슷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반복합니다. 작은 탈선은 늘 있지요. 무심코 스마트폰 알림을 눌러 엉뚱한 세상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돌아오듯, 대부분의 이탈은 곧장 복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전혀 모르는 동네에서 내리는 일, 길을 잃다 발견한 오래된 책방, 우연히 도착한 안부 문자 한 통. 계획에 없던 그 일탈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게 하고, 삶의 다른 결을 보게 만듭니다.



그림책 《슈퍼 거북》은 궤도 안에 갇힌 삶을 풍자합니다.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긴 뒤 거북이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자유를 잃습니다. 다른 이들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더 빠른 거북이가 되려 애쓰지만, 삶은 건조해지고 웃음은 사라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북이는 토끼의 재도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패배합니다. 모두가 놀랐지만 거북이의 표정은 환해졌습니다. 패배는 끝이 아니라 해방이었기 때문이지요.

경주가 끝난 후 거북이는 다시 정원을 가꾸고, 책을 읽고, 햇살을 즐기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슈퍼 거북의 궤도를 벗어나자, 비로소 본래의 삶을 회복합니다.

시와 그림책의 메시지는 정해진 코스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길에서 살짝 벗어날 때, 새로운 기쁨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삶을 흔드는 건 언제나 계획에 없던 이탈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물론 궤도를 벗어난다는 건 두렵습니다. 안정과 질서를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시인은, 흔적 없는 삶보다 “획을 그을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찬양합니다. 거북이의 선택처럼, 우리가 우연히 겪는 작은 이탈처럼, 삶은 그때마다 새로운 빛을 얻습니다.

그 자유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늦은 밤 산책길에서 불현듯 올려다본 하늘에 별빛이 가득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 그 짧은 해방의 감각이 우리를 더 살아 있게 합니다.

삶은 본래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흐르지만 그 길에서 잠시 벗어날 때, 별똥별처럼 스치는 순간이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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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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