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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못난 글

광복절에 생각난 펭순이

잊지 못할 2025년 을사년 8. 15 광복절

by 서진

올 1월, 저는 단순한 생각에 무모한 짓 하나를 벌이고 말았습니다.


직업학교에서 2달 동안 나라에서 진행하는 일러스트와 포토샵 그리고 영상 편집이라는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컴퓨터는 전원을 켜고 끄는 작동만 할 수 있으면 하지 않겠어?라고 친구에게 용감히 말하고 같이하자 꼬드겨, 일단 접수를 했었습니다.

결국 친구는 포기하고 저만 남아서 수업을 들었지요.


처음 컴퓨터를 켜고 Ai라는 일러스트를 열었는데...

역시 무식함이 용감함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업을 듣던 첫 한 주 동안 고민 많이 했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젊은 친구들에게 허둥대는 제가 방해는 되지 않는지.

제가 선생님께 드리는 수많은 질문에 수업이 느려지지는 않는지.

계속 다녀야 하느냐? 아니면 당당히 난 못하겠다며 꾸벅 인사하고 나와야 하느냐?라는 매일 같은 질문을 저에게 던졌지만 계속 다녔어요. 하하하


그렇게 속성으로 배운 일러스트 교육을 받고 캐릭터를 만들라는 선생님의 미션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펭귄이 메인 주제였습니다.


펭귄. 펭귄. 펭귄.

어떤 펭귄? 이라며 강의실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페더 맥그로우,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는 펭수, 마다가스카 스키퍼와 코왈스키, 리코, 프라이빗 펭귄 부대,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인터넷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다녀보니 귀여운 캐릭터들이 많더군요.

다른 학생들은 이미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더라고요.

발레 하는 펭귄, 학교 가는 펭귄, 로봇 펭귄, 레고 펭귄, 수줍은 펭귄, 아보카도 펭귄 등등 귀여운 캐릭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펭귄은 남극에 살잖아.’

그리하여 남극 기지에서 고생하는 분들에게 요리해 주는 요리사 펭귄을 만들기로 했지요.


초보가 하나부터 열까지 창조는 불가능하니 스키퍼를 모티브로 요리사 펭귄을 마우스를 꽉 잡고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점심시간을 쪼개고 쪼개 이틀 만에 요리사 펭귄을 만들었습니다. 우와~

그러나 제 주위에 모여든 젊은 친구들은 독특하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하며 제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더라고요.

허접한 캐릭터이지만 저에겐 피와 땀이 들어간 첫 작품입니다. 하하하



요리사 펭귄을 만들던 그 주, 주말이었습니다.

연습도 할 겸 컴퓨터 앞에 앉아, ‘나도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나…’라며 일러스트 창을 띄웠습니다.

남극 기지를 지키는 펭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죠.

빨간색과 파란색, 건. 곤. 감. 이를 요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주말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요래조래 조합을 해봤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과 바꿔 만든 캐릭터는 점점 더 베티 붐을 닮아가며 내가 보아도 조금 괴상했지만, 칼은 위험하니 채찍을 쥐여주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와 에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을 신겼습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날아와 지켜 달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비상계엄이 있던 12월 3일 펭순이가 있었더라면, 홍범도 장군을 공산당이라며 폄훼하던 윤 씨와 일당들을 쉽게 제압하고 막아 줬을 것인데. 다치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그럼 위험하게 담을 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극우들이 설치는 심란함도 없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해 봤습니다.



다음 월요일, 설레는 마음으로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짜자잔 남극 기지 지키는 펭순이를 열어 선생님과 학우들에게 보여 줬죠.

모니터를 보며 ‘제가 이 펭순이를 어떻게 만들었느냐면요.’라고 시작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뒤에 서 있는 선생님과 학우들이 조용합니다.

뒤를 슬쩍 돌아봤습니다.

알쏭달쏭한 그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오늘은 캐릭터로 이모티콘을 만들어 볼 거예요.’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날 바라고 계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 하나를 더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하긴 제가 생각해도 펭순이로 여러 가지 모양의 이모티콘을 만들기엔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하여 세 번째 캐릭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랑에 빠진 펭순이의 다이어트’

주위에 앉은 젊은 학우들이 귀엽다고 칭찬해 주는데, 그리 반갑지 않은 기분이었죠.



그러나 그 덕에 저는 세 가지 캐릭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캐릭터가 마음에 드세요?



120년 전 참담했던 을사년을 120년 후 2025녀 을사년 광복절에 독립군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평화로운 날, 잊고 있던 펭순이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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