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마늘 훈제 오리 쌀국수 볶음
속이 더부룩해 소화도 시킬 겸 집을 나섰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옆집을 지나치자마자, 옆집에서 옆에 옆집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뒤뚱뒤뚱 뛰어나와 절 부릅니다.
“언능 들어와 봐.”
“무슨 일인데요?” 혹시 옆집 엄마 할머니에게 변고가 있나 싶어 문이 열린 옆집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지요. 다행히 옆집 엄마 할머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리모컨을 붙들고 TV 화면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어머, 고스톱 치셨나 봐요.”
“나 안 쳐. 마늘 갔당께.”
“고스톱 치매에 좋다는데.”
“쓰잘데기없이. 시간 읎어.”
하긴 옆에 옆집 할머니는 새벽에 텃밭, 아침 먹고 마을회관 노래교실, 집안 살림에 청소, 늦은 오후에 텃밭.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워낙 깔끔한 분이라, 그래서 가끔 할머니 청소를 도와 드려야 하지만, 집에선 언제나 세제나 맛있는 음식 냄새만 납니다.
그런 할머니가 고스톱 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전 할머니가 좀 여유로운 짬을 내는듯해 말해본 건데 말입니다.
들어서는 절 보는 엄마 할머니가 “옆집 처자 아녀?”라고 옆에 옆집 할머니에게 물어보자. “이~ 어디 가는 걸 붙잡았당께”
“우짠일로 울 집에 왔당가?”
“테레비 고쳐달라고 불렀제.”
엄마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그랬소. 앙그요. 울 집은 첨이제?”라며 끌어당겼어요.
“네. 할머니 집은 처음 와봐요. 따님은 어디 갔어요?”
70이 넘은 할머니를 따님이라 부르니 기분이 이상했다.
“노인정.”
요즘은 딸 할머니가 잠시 짬을 내 노인정에 놀러 다니시나 봅니다.
어떻게 엄마 할머니만 돌봐드리고 있겠어요. 딸 할머니도 자신의 시간을 가져야지. 잘된 일입니다.
옆집 할머니가 설명하길 TV를 보며 마늘을 까고 있었는데, 할마씨가 뭘 눌렀는지 소리만 나오고 화면은 안 나온다는 이야기였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사는 집엔 인터넷 설치를 하지 않습니다. 보통 기본 프로그램만 시청합니다. 옆집 할머니처럼 90이 넘은 분들은 시청한다기보다 그냥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옆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넷 공유기가 없었거든요.
리모컨으로 채널을 0으로 맞추고 올라가는 방향키를 누르자 화면이 나오더라고요.
“할머니 숫자가 많으면 화면이 안 나와요. 요만큼만 누르세요.”
“내가 늙어서 귀가 고장 나갔고, 우리 딸이 누르면 잘 나오드만 나가 누르면 그라네.”라며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TV를 보고 중얼거리듯 말하셨죠.
“마늘 깐 거 좀 주끄나?” 옆집 할머니가 고맙다는 말로 건네셨습니다.
“괜찮은데. 힘들게 농사진걸 어찌 먹어요.”
“가세.”
할머니 집 앞에 놓인 깐 마늘을 보고 허겁했어요. 은색 양푼 안에 가득 든 콩알만 한 마늘을 어찌 깠을까 싶더라고요.
“에헤~ 까느라고 힘드셨겠는데, 전 안 주셔도 돼요."
"그려도 좀 가꼬가."라며 마늘이 담긴 양푼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할 수없이 "요기 안 깐 마늘 있네. 요거 주세요.”라는 망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가물어서 밑이 안 들었당게. 그려 알이 작네. 언제 깔라고 걍 깐 거 가꼬가.”
“아니 안 깐 마늘 주세요. 내가 까서 먹을게.”
"깐 거 줘도 된디."라고 말을 흐리며 할머니가 집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가지고 나와, 봉지 가득 마늘을 넣어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비닐봉지에 든 조그만 마늘을 종이봉투에 담는데 더부룩한 속이 더 더부룩해지는 기분이었죠.
오봉 밥상에 껍질 버릴 비닐봉지와 깐 마늘을 담을 그릇을 올려놓고 심호흡하고 한 알 한 알 까기 시작했지요.
아무리 까도 늘어나지 않는 마늘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힘들여 지은 마늘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할머니들이 경작하는 작은 텃밭엔 수도가 없습니다.
비를 담아 놓는 뚜껑이 있는 커다란 황토색 다라 바닥이 보이면 할머니들은 커다란 통에 물을 받아 유모차에 힘에 부칠 만큼 실어 나릅니다. 비가 안 와 연일 땡볕이 내리쬐면 힘들 텐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유모차를 밀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집과 텃밭을 오가지요.
역시 텃밭엔 창고도 없습니다.
비료며 텃밭 가꾸는데 필요한 연장이나 비료, 비닐 또한 유모차에 실어 나릅니다.
그렇게 힘든데도 자식들 나눠줄 생각에, 나이 지긋한 동네 할머니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열심히 오고 가시죠.
그러니 저도 열심히 손톱만 한 마늘을 까서 먹어야 할 텐데, 앞이 캄캄합니다.
까다 보니 알맹이보다 껍질이 더 많이 나옵니다.
제일 큰 마늘은 엄지손톱보다 작습니다.
제일 작은 마늘은 새끼손톱보다 작습니다.
이 마늘로 어떤 요리를 할까 고민해 봅니다.
오늘의 식사로 통마늘을 넣은 훈제 오리 쌀국수 볶음.
반찬으로 통마늘을 넣은 빨간 양념 멸치 볶음.
음... 통마늘을 올리브오일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오래 끓여 부드럽고 고소한 마늘을 놓아야겠습니다.
한 알 한 알 마늘을 그릇에 담으며, 조금만 더 까보자.
아무래도 오늘 이 마늘을 까다가 한 끼도 못 먹을지도 몰라.
일단 훈제 오리 쌀국수 볶음과 멸치볶음에 넣을 수 있을 만큼은 까야지.
아니야! 굳이 두 가지 다 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마늘 안 넣고 멸치를 볶는다고 맛이 없지는 않을 거야.
통마늘이 들어간 훈제오리 쌀국수 볶음을 생각해 봐. 멸치 볶음은 얼마나 맛있겠어.
마늘 냄새 때문에 에어컨도 못 틀고 덥다 더워.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투정이야.
그렇지 않아. 어차피 까야할 마늘이라면 오늘 다 까 놓으면 내일부터 편하지 않겠어.
벌써 칼을 쥐고 있는 손과 오른쪽 손가락이 까맣게 물들었네. 어깨와 등줄기가 뻐근한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그래도 할머니가 준 마늘인데 까먹어야지.
제 머리와 마음과 몸이 서로 티격태격 싸우느라 손은 움직이고 있지만, 진도가 나가진 않고 있네요.
얘들아, 좀 가만히 있어봐.
슬슬 배가 고픕니다. 마늘을 까며 고민을 해서인가 더부룩하던 속이 다 내려갔나 봐요.
일단 배가 고프니 훈제 오리 쌀국수 볶음을 먼저 시작해야겠습니다.
훈제 오리 쌀국수 볶음
1. 먼저 쌀국수를 물에 담가놓습니다.
냉장고에 뭐가 있을까...
2. 훈제 오리를 꺼내고, 새송이, 당근 마지막으로 양배추. 베란다 한쪽에 둔 바구니에서 양파를 꺼내고 껍질을 벗기고, 깎고, 씻어 준비합니다.
3. 마늘을 씻어 물기를 제거합니다.
4. 양배추는 약간 두껍게 채 치듯 썰어 물에 담가줍니다.
5. 새송이도 큼직하게 썰어줍니다.
6. 양배추를 채반에 담아 물기를 빼줍니다.
7. 양파와 당근은 채를 칩니다.
이 정도면 재료는 다 준비됐네요.
요리하기
마늘을 마른 팬에 익혀줍니다. 익은 마늘을 그릇에 담아놓습니다.
훈제 오리를 구워 줍니다. 그릇에 담아줍니다.
훈제 오리에서 나온 기름이 있는 팬에 마늘과 채를 친 당근과 양파를 넣습니다.
새송이를 넣어줍니다.
느억맘 (베트남 액젓) 소스 대신 멸치 액젓을 넣습니다.
간장 조금, 레몬 청, 후추를 넣어 볶았습니다.
양배추를 넣고 잘 섞어 줍니다.
채반에 걸러 놓은 쌀국수를 넣어 볶아줍니다.
땅콩이나 호두를 살짝 볶아 빻아 넣어야 하지만 오늘은 귀찮아 깨를 잔뜩 갈아 넣었습니다.
잘 볶아 줍니다.
그릇에 담아 볼까요~
천천히 느긋하게 먹고 다시 마늘을 깔 겁니다.
오늘 밤은 길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