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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고추 하얀 감자전 & 하얀 양파 초록 부추전

비 오는 날엔 부침개

by 서진


비 오는 날엔 부침개.


기름에 부침개 지져내는 소리가 빗소리 같아 비 소식만 들려와도 부침개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한국인중 한 명이지요.


일기예보에 비 그림이 하루 걸러 그려있어, 하늘을 올려 바라보지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비가 와야 전을 부칠텐데 말입니다.


어젯밤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번쩍이던데,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까 싶어 자꾸 하늘로 눈이 향했네요.

물통을 유모차에 싣고 있는 할머니가 “더는 못 나른당께.”라고 투덜대며 유모차를 밀고 텃밭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그래도 저희 지역은 강원도에 비해 무난한 편이지요.


강원도는 최악의 가뭄으로 절수라던데, 강원도로 여행을 가야 하는 휴가철에 오히려 강원도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난 가는 상황이라 합니다.

강원도는 우리나라 여행 순위 5위안에 항상 들어있는 장소인데, 성수기인 이 휴가철에 절수로 강원도에 사는 주민들조차 빨래나 샤워 같은 물을 써야 하는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합니다.


휴가철, 강원도 하면 산을 끼고도는 강과 동해의 푸른 바다에서 극적이고 환상적인 레저를 즐기고 아이들과 첨벙첨벙 물놀이가 생각나지요. 놀다 놀다 지쳐 시원하게 샤워하고 몇 개 가져오지 못한 옷을 빨아 널어 다음 놀이를 준비하고요. 녹음이 어우러진 숲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평상에 누워, 생각만으로도 시원하고 새콤달콤 육즙이 주르륵 수박, 참외, 자두, 포도 그리고 감자, 옥수수 같은 간식을 먹으며 휴가를 만끽해야 하는데. 공공 화장실마저 단수라는데 여행 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감자농사는 막막함이 앞서고, 앞으로 겨울 김장 배추농사도 큰일입니다.


도대체 오랫동안 고위 관직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지역 현황엔 관심 없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선 가뭄으로 난리고 한쪽에선 홍수로 인한 재난으로 난리고.

더군다나 군산을 비롯한 전북과 천재지변에 강한 충청도는 홍수로 대피를 해야 할 상황이라던데. 7월의 악몽이 아직 진행 중일 텐데 악재 더 겹쳐질까 걱정입니다.


다른 지역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배추와 고구마가 주 작물을 키우는 지역이라 이 정도로 비가 안 오면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앞으로 김장을 위해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여기는 한 일이 주 정도 늦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십자 식물(꽃잎 네 개가 십자 모양으로 피어나는 식물)인 배추는 뜨거운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잎이 크기도 전에 대가 자라 꽃이 핀다고 합니다. 이젠 더위가 한풀 꺾였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이러다 올해도 김장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은데, 서민들을 위해 제발 김치가 금치가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속없는 제 뱃속은 감자전이 먹고 싶었나 봅니다.

자꾸 감자가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근처를 왔다 갔다 발걸음이 멈추질 않았네요.


밖에서 번쩍였습니다. 천둥이 쳤습니다.

반가운 비가 왔습니다.

정말 제가 어젯밤 본 번쩍임이 번개가 맞았어요.

시원하게 왔으면 좋으련만 빗소리 없이 떨어지는 저 비는 조금 오다 멈추지 않을까 걱정이었죠. 조금만 더 내려 농업용수 걱정하는 농민들 걱정을 덜었으면 좋겠네요.


아이고 제 손은 벌써 감자를 씻고 껍질을 까고 있습니다.

껍질을 깐 감자를 강판을 이용해 갈아 냅니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손도 아프고 팔도 아프니 위아래로 움직이고, 좌우로도 움직이고, 오른쪽·왼쪽을 바꿔 돌리며 갈고 또 갈아냅니다. 참 귀찮은 일이지요.

항상 느끼지만 저는 왜 사서 고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갈린 감자는 냉장고에 잠시 넣어둡니다. 물이 분리되어 나오길 기다릴 겁니다. 그래야 질척이지 않는 감자전을 만들 수 있거든요.


냉장고에서 붉은 고추를 꺼냅니다.

붉은 고추를 꺼내 길이로 반을 갈라 씨를 빼냅니다. 씨를 빼내면 덜 맵거든요. 옆에 옆집 할머니가 아주 매운 청양고추를 따주셔서 열심히 먹는 중입니다.

파란 고추는 장아찌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습니다.

씨를 제거한 붉은 고추는 어슷어슷 씹어도 맵지 않을 정도의 길이로 썰어 놓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부추를 꺼낼까? 아니면 호박을 꺼낼까? 고민 중입니다. 눈을 감고 잡히는 놈을 꺼내야겠다는 황당한 생각도 해보지만, 부추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노란 껍질을 벗겨 놓은 하얀 양파도 꺼냈습니다.

부추는 깨끗이 씻어 양파 길이에 맞춰 썰어 놓았습니다.

하얀 양파는 부추 두께에 맞춰 썰어 놓았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둔 갈아놓은 감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분리된 수분을 쪼르르 따라 버렸어요. 여기에 소금으로 간하고 붉은 고추를 넣어 프라이팬에 구워냅니다.


가뭄과 수해로 고생하는 분들은 뒤로 한 채, 철없는 저는 노릇노릇 구워질 감자전만 바라보고 있지요.

이렇게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난다면 곡식이 귀해 밥 대용으로 먹던 감자가 이젠 쌀보다 더 비싸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맛난 강원도 감자가 비싸져 못 먹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노릇노릇 구워진 빨간 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감자전이 완성됐습니다.


썰어 놓은 부추와 양파를 볼에 담고, 밀가루 3: 전분 1 비율로 부추와 양파가 들어있는 볼에 넣었습니다. 채소에서 나올 수분을 생각해 물은 조금 넣었습니다.

달걀을 넣어 고소한 맛과 단백질을 더해 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달걀 한 개가 들어갈 양보다 반죽이 적은 관계로 달걀은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소금으로 간하고 프라이팬에 올려 구워줍니다.


노릇노릇 구워진 하얀 양파가 고소한 부추전이 완성됐습니다.



‘어느 접시에 담아 먹을까?’라며 또 속없이 그릇이 쌓여있는 선반 앞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부추를 담을 하얀 접시와 감자전을 담을 납작한 옹기를 꺼냈습니다.

감자전과 부추전이 완성 됐습니다.


음...

감자전 한 장과 부추전 한 장을 살포시 반으로 접어 또 다른 하얀 접시에 담았습니다.

옆에 옆집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릴 겁니다.

아직도 그날의 콩국 때문인지 마음이 가벼워지질 않습니다.

(새로운 맛이 필요한 순간 ‘비빔 콩국수’)



어허!

비가 멈췄습니다.

조금만 더 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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