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 요리생' 아이들의 꿈을 쓰고 싶어요
'당신은 작가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다는 소식과 축하한다는 메일을 브런치로부터 받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울컥합니다.
사실 글쓰기에 젬병인 제가 글을 올리게 된 사연은 사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시골 바닷가마을 폐교 위기에 처한 중학교, 요리 선생님이었습니다. 특이하게 학교에서 개설한 수업이 아닌 아이들 만든 요리반이 있었지요. 아이들은 교육청에서 받은 지원비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의 수업을 저에게 원했습니다.
그때 저는 ‘너희들 능력으로는 안 돼!’라고 못 했습니다. 그래서 지도 교사님을 설득하고 저를 피하던 교장 선생님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요리반이 만들어졌지요.
지나는 선생님마다, 녀석들이 열중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공부를 그렇게 하지!’라는 핀잔만 남기셨습니다.
네, 아이들이요 빵점 안 맞으면 다행이고, 풍족하지 않은 환경, 가정의 보살핌마저 부족한 상태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그러한 이유인지 분노 장애, ADHD 증상에 우울해 보이기도 했지요.
선생님들에겐 문제아로 보이는 학생들이었죠.
그럼에도 저희는 열심히 요리하고 공부했어요. 그 결과 요리 축제에 참여해 저희만의 요리를 판매하며 조기 매진도 이뤘습니다. 3학년은 요리대회에서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뤄 동상을 받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에게 나타나던 분노 장애나 ADHD 증상은 사라지고 오히려 밝아졌습니다. 아이들에겐 정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제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아이들의 성적은 점점 올라가더군요. 서로의 성적을 들고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풉’ 소리가 절로 터집니다.
그런 아이들이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요리반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나 학교는 나름의 이견을 보였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아이들의 꿈을 저는 외면하지 못해 고민했습니다.
이도 저도 못 하던 전, 최후의 방법으로 글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인이 권유한 ‘브런치 스토리’를 기웃거렸죠.
과연 내가 글을 올릴 실력이 있겠냐며 며칠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러다 용기 내 못난 글을 올려 보았죠. 당연히 ‘꽝’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사적이었던 전 다시 도전했습니다.
다행히 축하한다는 소식이 왔지만,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읽어도 독자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는 글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차라리 실력을 키워 다시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과 불꽃 튀며 요리하던 이야기, 이웃들과 서로 나누는 음식 이야기, 제 주위를 지나가는 먹거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글을 쓰는 날이 늘어날수록 행복해지네요. 가끔 제 온몸이 간질거릴 때도 있다니까요.
그렇다고 없는 실력이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노력 중입니다.
눈을 감고 행복했던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깔깔깔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꿈을 꿉니다.
감히, 재잘대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의 꿈을 써 내려가는 날이 왔으면 하는 꿈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