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붉은 고비나물

말린 나물은 가을에 딱이지

by 서진

“아침에 동네 주민들이 왔다 가셔서 없을지도 몰라요.”

커다란 봉투를 들고 산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뒤따라 나오셨다.

한참을 산 이쪽저쪽을 둘러보시더니, “이쪽으로 가봐요.”라며 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로 안내해 주셨다.

“새벽에 와야 해. 안 그럼 동네 할머니들이 싹 돌고 가시니까. 얼마나 부지런한지 죽순 구경하기도 어렵다니까요.”라며 앞장서 걸어 올라가시더니 “찬찬히 둘러보고 내려와요.”라며 내려가셨다.

“언니, 그래도 둘러보자.”


회사 근처에 고사리가 많이 자란다고 자랑하던 동생. 급기야 주말 아침 고사리를 꺾으러 가자고 날 이끌고, 구시렁대며 다니던 회사로 날 데리고 왔다.

이리저리 훑어보지만 영 보이지 않고, 눈을 번쩍 뜨고, 눈을 비벼보아도 보이지 않던 고사리가 저 앞에 보였다.

달랑 하나. 산나물이란 것이 하나가 보이면 또 하나가 옆에 있고, 고개 들면 저 앞에 하나 있고, 바로 그 옆에, 바로 그 앞에, 옆에, 하나하나 꺾다 보면 산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만. 그땐 길을 잃더라도 한 뭉텅이는 손에 쥐고 싶었다.

겨우 몇 가닥 꺾고 주위를 뱅글 둘러보며 “아무래도 허세월 보낼 것 같은데, 내려가자.”라는 나의 말에 “언니 점심은 밖에서 먹고 갈까?”라고 너스레 떠는 동생의 등짝을 한 대 쳐 주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 동생의 상사인 동갑내기 친구에게 인사를 하려 찾아가는데, 아예 봉투를 들고 작업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많이 꺾었어요?”라는 그에게 고사리 몇 가닥을 들어 보여주었다.

껄껄껄 웃던 그가 “내 그럴 줄 알았지. 저쪽으로 가볼래요? 그런데 산이 좀 깊어서 위험한데.”라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가봅시다. 이왕 왔는데 한 끼 꺼리는 따가야죠.”

동생은 과장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앞장서 길을 나섰다.


걷고 걸어 냇물을 건너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 걸으니 뜨문뜨문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따금 한 번씩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위치를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사리를 찾아다녔다.

얼마가 지났을까?

동갑네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거 뭔지 알아요?”

“고비네. 여기도 고비가 있나?”
“얼래, 고비도 아네!”라며 고사리가 들어있는 내 봉투에 고비를 쏟아부어주었다.

“내 눈엔 안 보이던데. 과장님 눈엔 잘 보이는가 봐요.”라고 퉁퉁거리자, “아무한테나 보이는 게 아니요.”라더니 성큼성큼 걸어 고사리 몇 가닥을 꺾어 내 봉투에 넣어주었다.


허탕 칠뻔한 하루를 동갑네가 봉투에 가득 담아주었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나에게 “다음에 집에 가면 밥 한번 해줘요. 그날 참 맛있게 먹었는데.”라며 우리 집에서 먹었던 연어 코스를 상상했던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있음 말해줘요. 한 상 차려줄게.”


그리 멀지 않았지만, 가깝지도 않았던 어색한 사이인 동갑네.


동생 회사 직원들을 위해 감사와 당부를 담은 저녁 식사에 마련했을 때 그가 있었다. 그날은 못 버틸 것 같았던 동생의 3개월 수습 기간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미 젊은 직원들은 집에 모여 파스타와 스테이크, 샐러드, 마늘 빵, 감바스 같은 서양요리로 만났었다. 그렇게 만났던 모두가 그와 나의 첫 만남을 걱정했었다. 고집불통에 까칠한 과장님과 이상한 아줌마가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과장님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했던 모양이었다.


나이 든 상사분들이 한 분씩 집으로 들어오고, 내 품에 안긴 와인 한 병을 받아 들고 인사를 했었다. 식탁에 연어회와 연어 스테이크, 연어 샐러드, 연어 덮밥 그리고 된장찌개와 나물들을 차려 내고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내 첫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생기지 않아서인지 어색한 분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직속상관인 안경태가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가 조금씩 나아지려는 그때. 준비했던 술이 몇 병 남지 않자, 누가 술을 사 올 것인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시골에 살았던지라 사탕 하나를 사려해도 한참을 걸어 면사무소 근처까지 가려니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술 안 마신 과장님이 갔다 오시면 되겠네.”라고 내가 얘기하는 동시에 직원들과 동생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과장님을 바라보며 침묵이 흘렀다.

“왜?” 눈치 없는 내가 그들을 둘러보았다.

“과장님 이 중에 제일 선임인데 어떻게 술을 사 오라고 해요.”라던 대리님.

“과장님 나이가 많으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내 질문에 그가 날 슬쩍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가지 뭐.”라고 내가 벌떡 일어나자 “언니가 00년생이지? 그럼 둘이 동갑이네.”라며 나만큼 눈치 없는 동생이 거들었다.

“그래, 우리 친구야? 친구야 둘이 갔다 오자.”라는 말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날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로 지내며 명절에도 번갈아 가며 회사를 지켜야 하는 직원들에게 명절 음식을 차려주었었다.

그렇게 지냈던 동갑네는 고사리와 고비가 햇볕에 바짝 마르기도 전에 전출되어 다른 지방으로 갔다.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던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


동갑네가 꺾어 봉투에 담아 주었던 고비.


고비 by pixabay


고비와 고사리는 비슷하게 생겼다. 단지 고비엔 붉은 털이 있고 점점 자라면서 그 붉은 털이 하얗게 변해 먼지가 뭉쳐 붙어 있는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물로 준비해 둔 고비와 고사리는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의 똑같이 생겼다.


고비는 독성이 있어 생으로 먹을 수 없다.

줄기에 붙은 털을 털어내고 씻어 내어 물에 20 정도 끓여내, 적어도 서너 시간은 물에 담가두어야 한다. 또한, 중간중간 물을 갈아 주어야 쓴맛과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고비를 끓는 물에 데쳐 말린다. 바짝 말린 고비는 물에 반나절 이상 담가둔다. 이때 물을 여러 번 갈아준다. 불린 후, 물에 20분 정도 끓여낸 후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 뚜껑을 닫고 두어 시간 뜸을 들인다. 이렇게 삶아낸 고비를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쓴맛과 독소를 마저 없애준다.

요렇게 불려둔 고비는 냉동실에 넣어 두고 사용한다.


한방에서 여러해살이인 고비의 줄기와 뿌리는 약용으로도 사용한다. 특히 관절에 특효고 줄기는 인후통에 뿌리는 이뇨제에 좋다고 했다. 감기로 인한 발열과 피부 발진에도 효과가 있다.(한국토종작물도감)

이외에도 여러 가지 영양성분과 효과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건강을 위해선 뭐니 뭐니 해도 올바른 처리 방법을 익히고 골고루 먹는 식습관이 중요다라고 생각한다.


요리하기

물에 불리고 삶고 뜸 들이고 여러 번 헹구고 다시 물에 담가서 쓴맛과 독성을 제거한 고비를 볼에 담는다.

볼에 담은 고비에 마늘, 들기름 2 & 올리브유 1, 액젓 그리고 달인 조선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팬을 달구고 무친 고비를 넣어 볶는다.

잘 볶아진 고비에 자작하게 물을 넣는다.

물이 끓으면 약한 불로 낮춘다.

물이 졸아들었으면 송송 썬 대파나 쪽파를 넣어 볶아준다.

불을 끄고 깨를 넣어 뒤적여준다.

접시에 담아낸다.


고비는 고사리와 달리 부드러우면서 쫀쫀한 식감과 진한 향과 맛이 있다. 그래서 예전엔 고기 대신 국에 넣기도 했다 한다.

아무래도 오늘 밥상엔 다른 반찬 없이 고비나물과 가지김치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