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프레이밍을 벗어나라
난 이 세상 모든 직업은 문제 해결과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도 그렇고 요리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문제 정의와 해결이 중요해요’,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라고들 하는데,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는건데?”라는 질문이 늘 있었다.
그에 대한 답을 <리프레이밍(토마스 웨델 웨델스보그)>을 통해 조금은 찾은 것 같다.
‘리프레이밍’은 틀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나은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인 프로덕트 디자이너, 또는 메이커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이 글에는 책 내용 중 아주 일부만 담았고, 중간중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을 함께 적어보았다. 책에는 더 자세한 내용과 흥미로운 사례들이 담겨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느린 엘리베이터 문제’라고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로, 대표적인 리프레이밍의 사례이다.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한 아파트의 세입자들이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 때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쉽다.
문제: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
해결: 속도를 높인다 (모터를 업그레이드한다 / 알고리즘을 개선한다 / 새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 등…)
물론 이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미 ‘속도의 문제이다’라고 문제를 프레이밍 해버렸다. 리프레이밍은 이 프레임을 벗어나 ‘정말 느린 게 문제인 걸까? 속도를 높이는 것이 세입자의 불만을 줄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문제: 기다리는 일이 짜증스럽다
해결: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지게 만든다 (거울을 단다 / 손 소독제를 설치한다 / 음악을 튼다 등…)
이 방법은 이전 해결책보다 훨씬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리프레이밍은 기존 문제의 프레이밍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리프레이밍이란 문제를 프레이밍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올바른 문제에 집중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기술이다. 저자는 리프레이밍과 문제 분석을 다른 것으로 바라보았는데,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 문제 분석: 엘리베이터가 왜 느린가?
- 리프레이밍: 엘리베이터 속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옳은가?
즉 문제의 프레이밍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문제의 프레임 자체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부수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프레임을 부수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까?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먼저 밖에서 프레임을 바라봐야 한다. 즉 처음부터 문제의 세부 사항을 자세히 파악하기 보다, 멀리서 문제를 바라 보아야 한다. (작가는 이를 ‘줌아웃’이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 문제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려하지 않은 요소가 있나?
- 프레임 밖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건 뭐가 있나?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문제를 다른 시야에서 보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재 풀고자 하는 문제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의식해보면 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사용자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 먼저 그 사용자가 이전에는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북카이브를 예로 들면 사용자들이 기존에는 어떤 방식으로 문장을 기록했는지, 그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통해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프레임은 우리가 근본적인 현상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기능적 고착’으로 설명한다. 기능적 고착이란, 물건의 가장 흔한 용법에 집중해 새로운 용법은 간과하는 경향을 말한다. 문제의 숨겨진 측면을 발견하기 위해 때로는 문제의 상황이나 특성을 주의 깊에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기능적 고착은 UXUI에도 적용된다. 기존의 기능이나 디자인 패턴을 의심해보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들이 특정 플로우에서 헤맬 때, 가이드로 안내하는 것만이 최선일까? 플로우의 순서 자체를 바꾼다거나 예시 데이터를 넣어 자연스럽게 이해를 도울 순 없을까?와 같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작가는 상황의 새로운 측면을 찾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라고 한다. 나는 이걸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봤다.
이 상황과 관련된 물건은 뭐지?
→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 또는 특정 기능을 사용할 때 함께 이용하는 도구나 다른 기능, 서비스가 뭘까? 이는 사용자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다. 사용자가 함께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면, 제품이 놓치고 있는 역할을 알 수 있다.
그 물건들은 어떤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나?
→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도구의 특성을 분석해 어떻게 우리 제품에 적합한 방식으로 차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다. 그 도구들의 형태와 용도, 심리적 효과 등을 파악하고 이를 우리 제품의 특성과 사용자 맥락에 맞춰 바라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기능 자체의 목적과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이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이유에는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이 간극을 발견함으로써 기능적 고착에서 벗어나 더 사용자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을 수 있다.
그 밖에 이용 가능한 건 뭘까?
→ 사용자가 함께 사용하는 도구나 서비스가 있다면, 그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다른 것들을 살펴보고 제품 확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목표를 재검토한다는 것은 올바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추구할 더 나은 목표가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즉 목표 자체를 ‘의심’해봄으로써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현재 설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보다 더 상위 단계의 목표가 무엇인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유는 상위 단계 목표 중 일부는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상위 목표로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목표와 수단을 생각하다 보면, 더 나은 목표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보딩을 개선해 서비스 앞단에서의 이탈률을 n% 줄인다’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이 때 상위 목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목표는 사실 ‘초기에 핵심 가치를 제대로 전달해 리텐션을 높인다’라는 상위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저자가 말한 상위 목표로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법이다.
목표가 무엇인가?
→ 온보딩을 개선해 서비스 앞단에서의 사용자 이탈률을 줄인다
그 목표가 왜 중요한가? 그 목표에 도달하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 사용자가 초기에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야 리텐션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밖에 목표에 도움이 되는 다른 중요한 것이 있는가?
→ 사용자에게 초기 핵심 가치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온보딩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화면 자체를 활용해 서비스 사용 예시 요소를 넣는 등 목표 달성을 위한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사람은 세상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있고, 이런 멘탈 모델은 때로 잘못된 인과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A를 하면 → 반드시 B로 이어진다’ 라는 가정이 잘못된 인과관계일 수 있음을 늘 의식해야 한다. 또 때로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간과할 때가 있다. 디자인으로 치면 태스크 수행 시간이 더 짧게 걸리는 UX, 심플한 UI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 자체로 좋아 보이는 목표는 큰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분명해 보이는 목표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B2B SaaS를 디자인한다고 하자.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는 디자인 목표가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도메인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빠른 처리가 꼭 좋은 서비스를 의미하진 않는다. 중대한 업무일수록 신중히 검토하고 화면의 복잡도가 높아지더라도 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자 하는 욕구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용자에게 무조건 빠른 업무 처리가 가능한 디자인을 제공했다가, 오히려 주요 정보가 생략되어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
디자인을 할 때 그 목표를 큰 관점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이 목표가 공급자 입장에서 설정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끔은 직면한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해 보여서 손대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시스템 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 프레이밍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엄청나게 처리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당신과 문제 사이에 벽을 세우는 일이다. 이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당신과 문제를 분리시킬 것이다.
문제가 아무리 커 보여도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문제를 축소해 보아야 한다.
문제의 일부분에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상황을 좀 더 좁게 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위에서 말한 다른 리프레이밍 기법들은 문제를 다르게, 더 크게 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 부분은 더 좁은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다. 어렵고 복잡한 시스템상 문제가 있다면, 이럴 땐 시스템 전체를 바꾸려 하기보다 작은 레버를 먼저 찾아보자.
이전에 북카이브의 문장 선택 단계 UX를 개선했던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책을 스캔하는 과정에서 AI 텍스트 인식 성능이 낮다 보니 변환된 텍스트가 실제 책 속 텍스트와 다르게 표시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용자들이 기록할 부분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능을 높이는 거다. 하지만 당시에 성능을 드라마틱하게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리소스도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쪼개 더 작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핵심 문제는 “저장할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였다.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찾을 필요가 덜 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스캔 단계에서 영역 지정을 할 수 있도록 해 화면에 표시되는 문장 개수 자체를 줄였다. 원하는 부분의 텍스트만 변환하니 텍스트가 조금 다르게 표시되어도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실제 사용자들 모두가 훨씬 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걸 다르게 보면 개발 리소스와의 트레이드오프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이너라면 가져야 할 중요한 관점 중 하나라는 생각하는데, 만약 백엔드 로직을 갈아 엎어야 하는 등 개발적으로 엄청난 공수가 드는 해결책이라면 아무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다. 디자이너는 상황에 따라 개발 공수를 덜 들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해결책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 알아내는 것이 리프레이밍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조망 수용’이다. 조망 수용이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그 문제나 상황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으로, 순간적인 감정 이입이 아니라 배경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행동이다.
조망 수용은 프로덕트 메이커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사용자가 이걸 어떻게 바라볼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파악하는 게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사용자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해관계자도 포함이다). 가장 필수 역량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역량이기도 한 것 같다. 저자는 이 조망 수용을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정박’과 ‘조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박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느낄까?’)
- ex) 내가 사용자라면 이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조정
- 상대의 선호, 경험, 감정을 벗어나는 것 (다른 사람들은 나와 어떻게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을까?)
- ex) 하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용자의 특성이나 맥락이 있을 수 있다.
정박은 여전히 ‘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조정은 주어를 '상대'로 두는 것이다. 프로덕트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용자의 상황이라면…”보다는 “사용자는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게 공급자 마인드를 벗어나 더 효과적인 조망 수용을 할 수 있다.
조정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1. 첫 번째 정답에서 멈추지 말기
사람들은 일단 그럴듯한 답을 내면 조정을 멈춘다. 정답일 것 같은 첫 번째 답을 넘어 더 파고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이게 진짜 최선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쓰면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 사람들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 맥락을 파악하기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들의 감정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감정 이입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 이입을 넘어서 맥락과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감정적이지 않은 다른 측면들을 파악해 그 감정이 나타나는 이유, 혹은 이와 연관된 다른 사실을 알아보아야 한다.
이런 조망 수용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느끼고 있는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솔루션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 많은 제품 랜딩 페이지나 상세 페이지를 보면 ‘이런 불편함 있지 않으세요?’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은 이유이다. 사용자에게 물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기능 어떠세요?”라고 묻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문제를 느끼고 있고, 그래서 현재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를 깊게 이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리프레이밍은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문제를 완벽히 정의하는 대신 리프레이밍을 한 차례 빠르게 진행하고, 나중에 더 많은 정보가 쌓이면 다시 돌아가 문제를 정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결국 문제를 보는 방식이 바뀌면 문제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냥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더 나은 문제를 더 나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그 '보는 법'을 바꾸어야 한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디자이너로서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리프레이밍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