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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Oct 26. 2024

<플라이데이터리코더>를 읽고

원래는 반도와 이어진 땅이었는데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이 되었다. 수만 번의 계절이 지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하여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섬은 고대 상형문자처럼 아름다웠다.

섬은 번성하여 하나의 마을을 이뤘다. 주민들은 사람이 한 명씩 죽을 때마다 부엉이가 섬을 떠난다고 믿었다.

어느 날 섬 등대 위에 경비행기가 추락하여 꽂히고 대마 밭은 하트 모양으로 타버린다. 애틋하고 쨍한, 달달하고 칼칼한 냄새가 번져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노인도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춤을 추었다.


아이의 엄마는 결혼한 지 몇 달 안 돼 과부가 되었다. 친정에 다녀온다 말하고 나간 후 화재가 난 여관방에서 낯선 남자와 함께 죽었다. 노인은 아이가 엄마에 대해 물으면 사람도 아니었다고 답했다. 백과사전을 모두 읽은 삼촌은 비행기 블랙박스를 보고 아이에게 모른다고 말하기 싫어 엄마라고 답한다. 뭍에서 정보원들이 와서 블랙박스를 찾는다. 마을 사람들 모두 조사한다. 삼촌은 몰래 블랙박스를 그들에게 갖다 놓는다. 아이는 엄마에게 안녕 인사를 하고 이별한다.








갑자기  나비가 내 앞에서 어설픈 날갯짓을 하면 나는 죽은 사람인가 생각한다. 어디서 들은, 어떤 종교의 출처인지 모른 채 나는 환생한 나비인가 추측한다. 새에게도, 한 송이 꽃에게도 나는 죽은 사람을 본다. 또는 누구의 미소, 어디서 본 듯한 친절, 눈, 비, 바람에게서도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블랙박스라니... 김애란 작가의 엉뚱한 상상력에 웃음이 터졌다. 아이는 어리고 삼촌은 그의 영웅이라 이래 저래하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블랙박스는 너무 했다. 아무튼 아이는 블랙박스에게 인사한다. 심지어 안아본다.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온기를 블랙박스의 그것으로 착각도 한다. 그러나 주인이 있는 블랙박스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혼령은 다양한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해독 불가능한 고대 문자처럼. 그러나 내가 믿으면 그것이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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