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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Aug 02. 2018

그들은 왜 골목길에서 낭만을 찾는가?

일상의 공간 VS 낭만의 장소, 골목길  

나에게, 우리에게 골목은 어떤 공간인가?

서울의 골목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건 2016년 여름쯤이었다. 우연히 뉴스에서 서대문 형무소 맞은편에 위치한 옥바라지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무악 2구역 안에 위치한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강제 철거를 진행하려는 용역업체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정확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머무른 여관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보존을 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이 부분은 추후 정확하게 입증할 만한 사료나 근거가 없어서 보존 자체가 안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재개발이라고 하면 늘 따라다니는 보상금 문제도 한몫을 했고,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 철거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철거업체와 주민 간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 서울시장이 나서서 중재하기도 했지만, 결국 철거되었다.

2016년 5월 철거 당시 모습
철거 농성 당시 주민들이 공사벽에 적은 글과 그림들

이때가 서울에 상경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해였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몰라도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존재하던 것이 사라지고 결론이 부정적으로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는 정도로 기억한다. 생전 처음으로 가 본 동네에서 먼지를 날리며 철거 작업 중인 포클레인을 한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왔다.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서 좀 조사해 보았더니 앞서 잠깐 언급했었던 '독립투사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머물던 여관이 있었던' 부분을 부각해서 중구청에서도 입간판을 만들어 홍보할 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철거를 허용했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종로구청이 역사와 연관된 장소가 맞는지,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나 자료들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하는 작업 없이 입간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한편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하는 입장도 있었다.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골목일 뿐만 아니라 옥바라지 골목에 위치해 있던 어느 여관에서는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말도 전해졌다.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실제로 목격했다는 이야기와 성매매 대상자를 찾는 게시물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이렇게 조금만 찾아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종로구청은 왜 확인 작업도 없이 역사적 장소라며 입간판을 만들고 홍보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론은 역사적 장소니 성매매가 이루어진 장소니 라는 이야기는 진실 여부를 입증할 만한 정확한 근거나 인물이 없어서 그 어느 쪽이 맞다고 확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서촌의 골목

말이 다소 길어졌는데 아무튼 이를 계기로 나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서울에 남은 수많은 골목들을 탐방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덕에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몰랐던 동네를 알게 되고 지리도 익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골목에는 역사가 존재하는 곳도 있었고,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곳,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생긴 의도적인 골목도 있었다. 골목은 길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역할을 해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조성된 단지가 있는 아파트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인문학적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 바로 '골목'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 출처: TVN

어린 시절의 나는 골목이 있는 동네에 살았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한 담벼락 너머로 이웃집 나무가 넘어와서 열매를 맺은 것도 봤다. 또 골목길보다 지대가 낮은 공간에 피아노 학원이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지나가는 길에 아는 어른들이 보이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골목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읽어 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김기찬 사진작가의 골목 안 풍경
OO동, OO길, OO골목

서울은 그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다를 뿐만 아니라 물리적 공간도 이동한다. 대학로, 명동과 같은 특정구역에서 가로수길, 세로수길, 샤로수길 같은 거리로 이동, 현재는 익선동, 연남동, 망원동의 골목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상업지에서 주거지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시대별 핫플레이스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사이트

http://cft.or.kr/sub/?num=646

사진/자료출처: (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렌드센터 (CFT)

사진/자료출처: (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렌드센터 (CFT)

10여 년 전만 해도 홍대, 신촌, 명동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골목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골목이라는 장소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적었을뿐더러 외부에 노출된 길이 아닌 주로 주거지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아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언제부터인가 골목에 카페,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고 인기를 끌면서 너도 나도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골목길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핫한 장소로 변모하게 된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골목길을 경험한 세대 VS 경험하지 못한 세대

"아파트에서만 20년 살았어요.

-20대 중반 대학생 인터뷰 중 - "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아파트에서만 20년을 살았단다. 그렇다면 골목길에 대한 경험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골목이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같은 방송 매체를 통하거나 이색적인 카페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알게 된다. 그러니 골목길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삶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 차원이 아닌 핫한 카페나 음식점이 위치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인증숏 찍고 싶은 낭만적인 장소로 인식되는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수업 중 겪었던 일화는 골목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좋은 사례다.

골목길을 재생하라?

어느 시점에서 부터인가 '도시재생'이라는 화두가 떠오르면서 정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벽화사업이 진행되었고 대상지는 주로 골목의 벽이었다. 오래되어 낙후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환경적으로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사업이었고 이후에는 관광화로 사업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는 골목을 방문하는 이와 골목에 거주하는 이에 대한 이해관계와 고려 없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한쪽이 피해를 입으면서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골목에 대한 관심과 공간에 대한 이슈가 발생했고, 벽화사업이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염리동 소금길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도 매력 있는 장소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골목이다. 사람들이 항상 붐비는 번화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주로 주거 지역을 관통하는 길이다. 좁은 골목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비 상권이었던 지역에서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의 익선동이 그 어느 때보다 핫한 동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측면들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이 모여 있던 동네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근대시기의 도시한옥이라는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매력은 더 짙어졌다.

주거지와의 결합 + 젠트리피케이션

개인의 경험과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사업으로 한껏 이미지가 부풀려진 골목은 대부분 주거지였으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관광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르는 임대료로 인해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주민이 건물주이면 상관없지만 세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건물만 소유한 외부인도 많다. 서울에 골목이 존재하는 곳은 아직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오래된 동네 거나 아파트 단지화되지 않은 주택 밀집지역이다. 때문에 도시재생의 화두로 접근이 가능한 것이고 새로운 상권이 들어서기에도 용이하다. 망원동은 다세대주택, 빌라 밀집지역이고 익선동은 오래된 한옥이 밀집된 지역이다. 해방촌, 후암동은 다세대주택, 빌라, 오래된 집들이 혼재된 지역이고 연남동, 연희동도 마찬가지. 마치 도시재생 = 골목 개선사업 혹은 정비사업 같은 등식이 정해져 있듯 공통점들이 발견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카페나 음식점이 생기고 주거지였던 곳이 차차 잠식당하며 상권이 형성된다.

망원동 골목길, 카페가 생겼다.
경리단길 위쪽 주택가, 곳곳에 카페가 보인다.

주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어느 동네에서나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상권 형성 이후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이나 대책도 없이 무분별하게 진행된다. 변화하는 것에 대해 채 적응도 하기 전에 임대료는 지속적으로 치솟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 이러한 사태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시행되는 것인가?'하는 화두를 던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골목을 찾는다.

결과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시행되는 도시재생사업 중 일환인 골목벽화사업, 개인적인 차원에서 골목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의 결합으로 원론적으로 따져 보고 거쳐 가야 할 과정들은 생략된 채 골목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낭만을 쫓게 만들었다. 특히나 익선동의 경우 조선의 건축가가 당시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집을 사거나 구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거주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집단 한옥 개발지 구이다. 익선동 자체가 '거주공간'을 목적으로 형성된 동네란 의미다. 하지만 더 이상 거주공간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없다. 상권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찾는다. 두 사람이 걷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이 꽉꽉 차 있다. 처음 이 장면을 마주하는 사람은 아마도 익선동이라는 동네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모습이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많은 이들이 익선동의 골목을 찾는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잊혀진 채 말이다.

서민들의 집단 주거지였던 익선동

골목길에서 낭만을 찾는 누군가에게 한 번쯤 이 골목길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이전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골목길과 연결된 동네는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 오면 어떨지 제안해본다. 누군가는 너무 유난스럽고 진지한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여기에 살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된 주민이라면 어떨지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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