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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Nov 13. 2019

10. 순례를 멈추기로 하였습니다.

찌와 레의 산티아고는 언제나 흐려

지난 밤 숱한 상의를 통해 결국 순례여정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반팔만 덜렁 챙겨온 바보멍충이와, 무릎통증으로 절뚝거리는 찌씨의 상황 플러스 도대체 왜 나름의 휴가를 이렇게 통증으로 보내야하나... 라는 궁극적 현타가 더해진 결정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은 멈추지 않습니다. 호텔 리셉션엔 실리콘밸리의 개발자같이 생긴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물었죠.

스페인 어딜 가야 아주 좋을까? 

지금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분쟁때문에 난리도 아니라고 하니 남쪽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합니다. 따숩고 해산물이 그득한 곳이죠.

그 아이는 아주 심플하지만 기똥찬 정보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버스타고 한시간 반만 올라가면 비토리아란 곳이 있단다. 그곳에서 뱅기를 타면 한 방에 세비야로 갈 수 있어. 세비야 새우는 줄 것이다. 너의 혀의 슈퍼 충격을.

그래서 저흰 세비야를 기점으로 론다, 그라나다, 말라가 등 남부쪽을 돌고 바르셀로나로 올라오기로 했습니다.

놋북이 없는 상태에서 핸드폰만으로 뱅기를 예약하고 버스를 알아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물어물어 알 수 있다는 게 더욱 놀라웠습니다. 스페인어는 제가 남미여행 할 때 떠듬떠듬 배워온 것이 다였어요. 대략 궁금한 걸 물어볼 순 있지만 그들의 대답을 이해하긴 어려웠달까요. 눈빛과 체온으로 교감하는 대화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작업은 매우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모르는 언어들이 가득하단 것은 괜히 진이 빠지게 만들죠.

여튼 코스를 대략 설정한 후 오지는 빠에야를 와구와구 먹은 뒤 오랜만에 멍때리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사실 앞서간 순례자 친구들이 보고싶기도 했어요. 그 친구들은 잘 가고 있을까...


한편으론 조금 아쉽기도 하고. 우린 뭔가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닐까. 더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등등.... 못내 아쉬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죠.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오기로 결심한 것도, 걸어보자고 밀어부친것도, 멈추기로 한 것도 모두 선택의 문제일 뿐이죠.


이 선택이 앞으로 또 어떤 선택들을 불러올 지 궁금해집니당. 비오는 로그로뇨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낮잠을 자야겠어요.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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