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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16. 2022

아버님과 대화할 때 유용한 황금리액션 모음

시아버지, 장인어른, 우리 아빠, 너네 아부지, 쟤네 아버지 할 것 없이

오늘은 오랜만에 일상 얘기나 해보려고 합니다. 설도 다가오고 하니까.




이 나이먹고 느끼는 건데 아빠들은 말동무가 많지 않아요. 물론 아빠도 오래된 친구가 있지. 하지만 많이도 달라진 가치관과 끊임없이 자식농사 대결로 대화가 길어질 수록 괜시리 피곤해요. 우리 자식이 짱인데, 남의 자식 자랑만 듣고있으니 노잼인거야. 

그래서 아빠들에겐 고영희와 갱얼쥐가 필요하다.


엄마와 자식들은 아빠의 얘기가 지겨워. 너무 어릴 적부터 똑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왔거든. 이제는 '했던 얘기야.' 라는 말 조차 하지 않더라고. 그냥 어어 어어어어 어어어어 하고 딴 거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어. 


그러다 이제 결혼을 하고 '사위'란 존재가 생긴거에요!! 아빠의 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거지. 게다가 장인어른이니 얼마나 극진히 대해야겠어요. 귀기울여 들어드리고, 리액션도 해드리니 아버님이 신이 나셨어! 아버님들은 과거에 모두 '굉장한 시절'을 지니고 있거든요. 물론 이미 많이 들어서 모두 외워버릴 지경이지만, 거기에 살짝의 리액션을 더해드리면 아버님들은 아주 즐거워하신단 말이죠. 근데 이 리액션이란 것도 레벨이 있어요.


- 그냥 리액션 : 오+네

아! 네네.. 네.. 오....... 네... 네네네.. 오오.... 


- 고급 리액션 : 아진짜요. 대박. 멋지다아.

아진짜요? 헐. 대박. 멋지다. 


- 황금 리액션 : 질문이 더해진 케이스

오 근데 그 때 아버지는 안다치셨어요? 오, 그럼 그걸 빠져나올 수 있어요?



아버님들의 스토리는 보통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카테고리별로 흥을 돋울 좋은 황금리액션에 대해 알아볼거에요. 이제 설도 얼마 안남았고 하니까, 아버님들을 춤추게 할 황금리액션을 숙지해서 기쁘게 해드려보아요. (물론 현금이 최고입니다.)








1) 난 도덕적으로 살아왔다. 


보통 여기엔 가난의 시절이 곁들여지는데. 주요맥락은 

'내가 이런저런 사건으로 손해를 본 것은 인정, 그러나 나는 양심에 한 점 부끄럼없는 인생을 살았다! 우리 자식들에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런 겁니다. 보통 이 레파토리에선 엄마의 잔소리가 끼어드는데 보통 '그럼 뭐해!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엄마의 서글픈 스토리 또는 '아이고 두 번 부끄럼없다간 아주 등가죽 붙어 죽겠네...' 등 창의적인 디스의 형태를 띱니다.


이 때 황금리액션은


아버지는 그 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어요?!

와..진짜 저같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욕심같은 게 들지 않으셨어요?

진짜 그렇게 살아오셔서 지금 OOO(배우자이름)이 저렇게 잘 자란 것 같아요.

아니 진짜 그 사기친 놈들은 어떻게 됐어요?

와..아니 근데 그 때 시절에 아버님같은 분이 많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2) 2,3명까진 무리없이 팰 수 있었다.


아빠 진짜 초당5회나 때려봤어??


아버님들의 스토리에 또 무용담이 빠질 수 없죠. 주요맥락은

'내가 여러 번 참았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얘기를 하더라. 진짜 딱 한 놈을 (화려하게) 딱 팼는데, 한 놈이 더 덤비더라. 나도 모르게 엎어치기를..어쩌고'

이런 겁니다. 이 레파토리에선 보통 엄마와 자식들은 딴 짓을 하고 있어요. (아예 듣질 않음) 이 때의 황금리액션은 주로 구체적인 피지컬과 정신력에 대한 칭찬으로 가야합니다. 분노보단 화려함을 극찬하는 느낌으로.


아니 근데 진짜 저 같아도 못 참았을 것 같아요. 그 정도 참은 것도 진짜 대단한거죠.

그 맞은 놈이 나중에 또 덤비고 그랬어요?

아니 그 나중에 온 놈은 뭐하는 놈이었는데요?

체급차이가 있었을텐데 와아..진짜 아버님 운동신경은...(캬아)

그 때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어요?

근데 그 때 어머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와 근데 지금도 맘 먹으면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때 맞은 쪽이 엄청 쫄지 않았어요?

엄청 당황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대처하셨어요?





3) 위기탈출 넘버원


아빠는 어릴 적 고양이 5마리를 키웠단다. (덜덜덜)


직접 응징한 스토리 이외에도 극한의 위기상황을 아버님 특유의 피지컬과 정신력으로 극복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주요맥락은

'내가 그 때 정신을 안차렸으면, 이미 죽었다.'

보통 이 스토리를 엄마가 알고 있는 경우라면 엄마도 철렁했던 시간이기 때문에 같이 거들어 얘기하시더라구요. '아니 진짜 이 양반이 그 때 여차하면 큰일날 뻔했다.' 그리곤 부주의로 흘러가요. '그러니까 왜 거길 가가지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 때 딱 중간에서 황금리액션으로 흐름을 이어가줘야 해요. 이 때는 아버님의 무궁무진한 대처능력과 순발력에 대한 감탄이 중요합니다.


와 만약 그 때 안 빠져나왔으면 어떻게 되는거에요?

엄청 무섭지 않으셨어요?

진짜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니었어요?

딱 그 때 무슨 생각 드셨어요?

아니 진짜 거기서 딱 생각이 멈췄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말잇못)

그 때 이후로 다시 거기 가보셨어요?

어머니는 뭐라고 하셨어요?

와...진짜 대박. 거의 이런 건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데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4) 내가 이걸 이렇게 잘 알고있다.





아버님들의 지성은 대학교 뭐 그런 게 아닙니다. 보통은 경험과 전문지식에서 비롯되죠. 공인중개사 하셨던 경험으로 부동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거나(대부분의 아버님들은 거의 준전문가라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택시를 해서 길에 대해 빠싹하게 꿰고 있다거나, 세계 경제 동향에 대한 인사이트라던가 이런걸 지니고 있죠. 요즘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뭔갈 도와줘야 핸드폰으로 뭘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실 수도 있거든요. 연륜에서 오는 지식을 존중해드려야 해요. 주요맥락은

'내가 아는 지식은 평생 써먹을 수 있으니 잘 들어라. 이게 너네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 진짜요? 그건 몰랐어요! 아버님은 언제 공부하신거에요?

그 때 공부하시면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아니 진짜 이런 지식은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것 같아요.

아 진짜 명쾌하게 정리되네요. 유튜브같은 데서 말하는 건 너무 복잡해서...(절레절레)

강의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 진짜 저는 앱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신기해요.

그 때 이런 거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시작하신 거에요?





5) 거친 야생미


아버님들의 거친 스토리는 탈출기뿐 아닙니다. 특히 낚시를 좋아하시거나 여행, 스포츠를 좋아하신다면 야생스토리가 또 굉장하죠. 주요맥락은

'그냥 물 한 통만 들고 태백산을 넘었다.'


아니 그때 뭐 무서운 게 나타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랬어요? (당연히 무찌름)

와.. 그 땐 주위에 사람도 없었잖아요. 그죠?

그냥 그렇게 씻어만 먹어도 되는 거에요? 대박...

아 진짜 아버님 완전 상남자...저는 아직도 날 건 좀 그렇거든요 (젠더감수성은 잠시 접어두고...)

아니 엄청 힘들지 않으셨어요? 그게 가능해요? (의문이 아닌 감탄)

한 밤중에 그렇게 있을 때 무서우셨던 스토리는 없어요? 

그 때 가장 생각난 게 어떤 거였어요?





6) 왕년에 돈 쓴 이야기


대충 이런 느낌


왠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아버님은 젊은 시절 플렉스타임이 있더라구요. 플렉스타임 이후 망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일반적이죠. 플렉스 타임이야기는 대부분 엄마는 잘 몰라요. 결혼 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엄마들은 이 스토리를 극혐하는 케이스가 많아요. 주요맥락은

'그 때 딱 한 달 술값만 얼마가 나왔다.'


와! 그럼 지금 돈으로 그게 얼만 거에요?

아니 대박..아버님 저도 그런거 해보고싶어요..(그럼 말리심)

와...그렇게 하고도 돈이 남으셨단 얘기잖아요! 헐...

아 진짜...저는 지금 상상도 못하겠어요. 보통 그럼 아버님이 다 사주시고 그런거에요?

그럼 그 때 같이 지냈던 분들도 대단하신 분들이었어요?

그럼 그 때 아버님이 쓴 돈만 이 정도였겠네요?

와 진짜... 그렇게 써봐야 돈의 가치도 아는 것 같아요.





7)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단함


아버님도 아빠엄마가 있었잖아요. 우리에겐 할머니 할아버지일거고.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면 흔히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얘기하고 싶지 않아하시거나, 또는 그분들의 대단함에 대해 격하게 자랑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이 때 엄마의 반응도 모 아니면 도인데, 엄마를 힘들게 했으면 한숨을 쉬시고 그게 아니라면 '여장부셨다.' '진짜 쾌남이셨다.' '잘생기셨었다.' '단아하셨다.' 등등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 

'지금의 어디(지역명)에서 할머니 모르면 진짜 간첩이었다. 여장부셨다.'


(손으로 세며) 와...그럼 그게 지금 한 40년 전 이야기인 거 잖아요?

할머니는 그럼 고향이 여기셨던 거에요? 

그럼 젊으셨을 때 할머님도 거의 신여성에 가까웠던 거네요!

아..진짜 피는 못 속이네요. 할아버지(또는 할머니)를 그대로 물려받으신 것 같아요.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 젊으셨을 때 사진이 궁금해요!

그럼 원래 양반가문에서 내려온 거 아니에요?

근데 그 때 어르신들의 교육방침이 진짜 앞서갔던 것 같아요. 

 





8) 졌지만 잘 싸웠다.


왠지 모르겠지만 IMF시대를 겪은 밀레니얼 세대들은 대부분 집이 망한 경험이 많습니다. 사업을 하다 망했거나, 주식하다 망했거나, 보증서서 망했거나, 부동산 날려서 망했거나...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죠. 아버님들도 시간이 지나 아련해지시면서 이런 과거의 실수를 언급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졌잘싸로 마무리를 해드려야 합니다. 이 때의 포인트는 아버지의 책임감이에요. 엄마는 이 이야기를 되게 싫어하실 거에요.

'망했긴 했어도 난 가족들을 놓지 않았다.'


하아..진짜 술 생각 엄청 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시 바로 택시를 시작하셨어요?

그 때 그렇게 되고 나서 엄청 힘들진 않으셨어요?

진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 그걸 다 책임지신거에요?

속으론 아버님도 진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걸 견디셨어요? 

아니 근데 진짜 너무들 했네요. 그렇게 주변을 챙기셨는데 다 내뺀거에요?

와..그럼 그게 지금 돈으로 하면 이 정도쯤 되는 건가요??

진짜 그 소식 딱 듣고나서 어떤 생각 드셨어요?





9) 우리 자식의 위대한 성장기


그래도 월드클래스입니다.


아버님들의 영원한 자랑은 역시 자식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저희 배우자님이 또 장녀인터라 아버님의 장녀사랑이 굉장하시죠. 마찬가지로 저희 부모님도 배우자님을 만나면 민망하게 제 자랑을 합니다. 민망해죽겠어. 서로서로 만나면 서로 본인 자식얘기하고 있어. (남의 얘기를 잘 안듣는 것 같아.) 모든 아버님들의 맘 속에 자식들은 좀만 지원해줬으면 다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인재들인거야.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교육방식이 맘에 들지 않음)

'더 잘해주면 서울대를 갔을텐데. 못난 애비둬서...'


그래도 아버님이 딱 그렇게 잡아줘서 잘 큰거에요.

지금 딱 이렇게 자리잡고 살고있는 것만 해도 이미 엄청 성공한거죠!

그 때 만약 엄청 지원해주고 했으면 오히려 엇나갔을 지도 몰라요.

아버님 교육방식이 그래도 옳은 길을 보여준 거 아닐까요?

아이고 아버님, 요즘 서울대보다 지금 자기 사업하고 자기 앞가림하는 게 더 대단하죠!

요즘 OOO(배우자이름) 만큼 이렇게 챙기는 자식도 드물어요.

진짜 아버님 자식농사는 완전 성공하신 거에요.




10) 무리를 이끄는 카리스마 군주



아버지는 다.. 무슨 '장' 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작게는 동네의 반장부터 회사에서 높은 직급에 있었거나, 조기축구회 주장을 했다거나, 무슨 협회에서 이사같은 걸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이 때는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통솔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주요맥락은

'강압적으로 하면 쉬웠겠지만, 사람 사는 게 또 그게 아니다.'


아 진짜 쉬운 방법도 있었겠지만... 딱 그렇게 하니까 더 잘풀리네요!

그래도 갈등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그래도 가끔 막 한 소리 하고 싶을 때도 있으셨죠?

근데 진짜 책임이 막중했을 텐데, 다들 그걸 알아주셨어요?

그 중에 문제되는 사람도 있었죠? 

그렇게 한 명 한 명 소중히 해서 지금 인맥이 이렇게 있는 거 아닐까요?

저도 지금 사업하면서 몇 명 안되지만 진짜 고민이 많거든요.

하아..진짜 딱 부드러울 땐 부드럽게 그렇게 해야하는 거네요?








팩트와 각색이 적절히 섞인 왕년스토리는 '꼰대'의 라떼토크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에요. 꼰대는 '너희가 잘못하는거고, 내가 하는 것이 맞다.' 를 강조하잖아요. 하지만 아버님들의 스토리는 '순수한 자부심' 그 자체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벌써 '경로우대'를 받을 나이가 되셨더라구요. 하지만 아직도 팔씨름하면 제가 져요. 왕년엔 다들 굉장했던 분들이었겠죠. 생각해보면 지금 저만해도 벌써 20대때 이야기가 가물가물하고... 저희 배우자님은 길 걷다가 어머님처럼 '어머 여기 진짜 허허벌판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아파트가 들어섰네. 여기 진짜 맛있는 냉면집 있었는데. 어머어머.' 이러고 있어요. 


1979년 9월 어느 날 미국 뉴햄프셔주의 옛 수도원에서 있었던 실험이 있었어요. 70~80년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젊었던 1950년대와 똑같이 생활하게 한 것이죠. 과거의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게 하고, 진짜 그게 현재의 뉴스인 것처럼 보여주자 그들의 신체능력과 지적능력이 20년 전의 그것처럼 개선되었다고 해요. 


어쩌면 우리 아버님들도 과거의 그 혈기왕성했던 그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거시는 것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그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 함께 떠들어드리면 그 때처럼 건강해지실 수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번 설엔 황금리액션으로 아버님들을 춤추게 해드려보세요. 


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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