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벤처와 겸직 사이 그 어딘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조직의 시선
보통 근로계약서에 겸직금지 조항이 있는 게 대부분이라지만 이게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용하는 건지, 늘 궁금했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고 진짜로 잘리는지 궁금했다는 뜻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투잡? 겸직? 그게 다 어떻게 다른 건데.
사실 궁금해서 정의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는데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유의미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인건비는 고사하고 적자만 안 나면 다행이지)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부르겠다.
아니 억울하잖아. 주식/부동산이나 사이드 프로젝트 전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건데 전자는 재테크고 후자는 겸직 금지로 분류된다는 게, 조직 내에서 주식 얘기는 꽤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눈치 볼 게 뭐 있어?
근데 사실 조항이 있는 이상, 아예 눈치가 안 보일 수는 없다. 그래서 물어봤다. 동료들 뿐 아니라 대표님, 인사담당자 모두에게.
저 사이드 프로젝트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전에, 내가 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끄적여보자면
사이드 프로젝트의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이제 딱 1년 반 정도 일하니까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점이 왔고 동시에 본업을 하면서도 스스로 '나는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잘 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건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궁금했다.
그래서 본업과 맥은 닿아있되, 조직 안의 구성원으로서 보다는 조금 더 부담없이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식에는 일단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길래 적어도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나오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봐야지 다짐했다.
마침 1~2주에 한 번씩은 주말마다 산책 겸 굳이 도보 40분 거리의 시장에 가서 한가득 장을 보는 본인이 제법 어이 없었고 기껏 그렇게 사온 식재료를 다 먹지 못해서 썩히는 걸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채소 저렴하게 사올 테니까 엔빵할래?"로 시작했는데 이 과정이 꽤 재미 있었고 친구들이 '덕분에 요즘 밥 잘 해먹고 산다'면서 감동적인 후기까지 남겨주니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하지만 .. 혼자 하면 무조건 중간에 흥미 떨어져서 나가떨어질 게 분명하니 책임감을 공유하며 업무를 분담하고 서로 격려해줄 프로젝트 메이트가 필요했다.
0.5초만에 발견한 사이드 프로젝트 메이트
일단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기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된 프로젝트 메이트를 찾고 싶었다.
조건 1. 약속 잡기 최대한 편하게 근처에서 자취하는 사람
조건 2. 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 보니까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
조건 3. 적어도 스트레스를 쌓이지는 않게 하는 사람 (중요)
사실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안 하겠다는 이유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근처에 있었으니! 입사 동기(아 맞다. 이 글의 시점은 2021년 5월 정도, 지금은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조금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그 사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여러 일을 겪었고 우리는 같이 퇴사를 했으며 새로운 회사에 같이 입사하게 되었다. 중간의 시간은 앞으로 차차 풀어 나가려 한다.)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심지어 퇴근하고 회의하면 되니까 따로 약속 안 잡아도 된다는 장점까지 있다. 아 왜 장점 맞다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된 것은 승낙 과정뿐 아니었다. 역할 분담과 업무 진행에 있어서도 각자 같이 일해오던 게 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게 내 일이겠거니' 하고 영차영차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 동네 1인 가구 장보기, 소분 OPEN
일주일 채소를 5,000원이라는 백반 하나도 안 되는 가격에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라니...! 심지어 장볼 때 덩달아 딸려오는 비닐/플라스틱 포장재가 안 나온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자신감이 넘쳤다. 자취생을 위한 집밥 스타터 키트로 자리 잡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니고 가장 먼저 회사에 알렸다.
"평소에 공감하던 문제였는데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어떻게 퇴근하고 또 일을 하지? 체력 진짜 대단하다."
"다음에 이것도 저것도 이런저런 것도 추가되면 이용해보겠다."
기타 등등 많은 반응을 보내주셨지만 역시나 피할 수 없었던 질문,
아무리 그래도 회사에서 너무 당당하게 부업한다고 하는 거 아니야?
뭐 이미 듣겠거니 예상은 한 반응이라 조금 찔리기는 했는데 이걸 팀장님과 인사담당자 입에서 들으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하더라. 물론 '신경이 쓰였다=설마 이걸로 어떻게 되겠어? 최대 불이익이라고 해봤자 해고인데 뭐 감수해볼 만 하지'였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짚고 넘어가면 앞으로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짧게나마 오해와 진실(?)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선 인사담당자와의 대화.
Q. 원래 회사에서 진행하려던 부가서비스였던 것 같은데?
A. 아니다. 원래 해보고 싶었던 내용이었고 그래서 부가서비스 아이디어로도 제안했던 건데 어차피 회사 차원에서 하기는 짜쳐서? 뭐가 됐든, 회사에서는 이거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열심히 키워서 언젠가 정식 서비스로 제휴까지 맺을 수 있도록 키워보겠습니다! 아자아자!
Q. 사이드 프로젝트 한다고 본업에 신경 덜 쓰는 거 아니야?
A. 와 이건 진짜 아님 (억울) 오히려 사이드 프로젝트 해야 하는데 종종 회사에서 못다 한 회의 이어서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회사 얘기를 금지어로 짖어까지 했다고. 그리고 수익구조 볼 때마다 '역시 창업은 쉽지 않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근로소득 최고'라는 자각이 끊임없이 들어서 성실한 프롤레타리아로 평생을 바치겠다는 생각까지 함.
(+ 그리고 프로젝트 메이트와의 회사 내에서 역할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업무가 굉장히 상이했는데 이제는 각자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니까 회사에서도 좀 더 생산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대표님, 보고 계시죠?)
Q. 그렇다면 열심히 키워서 우리 회사를 인수해주세요.
A. 네....?
아무튼 해도 된다고 한다. 심지어 구매까지 해주셨다! 역시 응원과 관심은 구체적인 금액으로 표현해줬을 때, 그 마음이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단 회사의 의견은 열심히 해보되,
상식적으로 선만 지키면 된다.
이렇게 된 거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보자! 사무실 공간도 재고 보관에 잠깐 사용해보고 (물론 회사에 먼저 양해를 구한 부분이다.) 회사 채널로 홍보도 해보고 멤버분들한테 매주 장은 보셨는지 여쭤도 보면서 그 상식에 대한 '선'은 어디까지일까 파악해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의 최우선 목적은 주체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다양하게 경험하며 회사라는 조직의 안팎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당연하다. 조직 내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