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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ug 13. 2016

한 여름의 따스했던 여행, 북해도 도동

한가로운 풍경과 빛, 그리고 소중한 인연이 있던 여행


도동(道東)의 첫인상


아담한 크기의 공항은 번잡하지 않았고, 오래된 듯했지만 깨끗함이 묻어나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는 우리를 태우고 온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전부였다. 심사관들은 무뚝뚝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밟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들의 친절에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한글로 쓰인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 오츠크에 어서 오십시오 "


2014년 여름. 메만베츠 공항
2014년 여름, 메만베츠 공항. 아담하고 한가한 공항 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메만베츠 공항을 나와 바라본 북해도 동쪽 끝 도동의 첫인상은 '넓다'였다. 곧게 뻗은 나무가 푸르름이 깔린 너른 땅에서 자신이 서있는 곳이 평원의 끝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리 넓지도 멀지도 않았음에도 하늘과 초록의 명확한 경계 때문에 더욱 크고 푸르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공항 도착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차창 너머로 나타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고.



2014년 여름. 차창밖에 비친 도동의 풍경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 화살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경우 도로를 알려주기 위한 표시이다.



도동의 일상


자그마한 동네에서 마주했던 초밥집. 비릿한 생선 냄새보단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간들이 쌓인 진한 세월의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낯설지 않 진득하고 굿굿한 주인장이 있을 것 같았고, 영화 심야식당에서 마스터를 돕던 미치루가 작은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놓을 것만 같았다. 마스터가 만든 마 밥을 좋아했던 그녀. 마 밥은 맛있음 보단 마스터를 신뢰하는 그녀의 마음이었으리라. 초밥집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마스터 처럼 처음 보는 이에게 낯설지 않고 믿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고.

 


2014년 여름, 도동의 어느 초밥집



한 여 햇볕은 이발소 앞마당 한가로움을 더욱 노곤하게 하고 다. 건조했던 공기는 오후의 여유를 더욱 느릿하게 하였고, 지붕 위 안테나는 TV 화면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자신보다 높이 파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흰 원통이 있는 타국의 작은 이발소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어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이발소 주인은 꽃을 참 좋아하나 보다. 가게 앞 화분엔 정성 들여 가꾸어진 꽃들이 피어있었다. 오후의 시간이 흐르고 한낮의 여유가 무르익어 조금 지루 할 때쯤이이발소 주인은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가지런히 놓인 꽃들에 시원한 물을 한 움큼씩 뿌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릴 것이다.


난 하루 중 꽃들에게 물을 주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2014년 여름, 도동의 어느 이발소



가 내렸다. 요란하지도 부산스럽지도 않은 소나기라 부르기도 민망한 잠깐의 비였다. 숙소 입구에 있던 투명 우산은 자신을 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게 내린 비는 우산들을 무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잠깐의 무안은 쓸쓸하지 않은 풍요로운 여유가 되었고, 벽에 붙어 있던 수은 온도계의 적당한 눈금은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8월의 여름엔 어디를 가더라도 덥고 습할 거라 생각했던 여행. 하지만 북해도 도동 시레토코의 오후는 생각했던 끈적임과는 달리 나의 살갗을 맨슬맨슬 하게 해 주고 있었다.



2014년 여름, 호텔 시레토코의 어느 호텔



도동의 풍경


무심코 멈추어 바라보았던 기찻길. 너머에는 오츠크 해의 넓은 바다가 있었고, 무인 건널목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채 말없이 바다와 길을 이어주고 있었다. 멋지기보다는 소박했으며 일상을 떠났음에도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풍경이었다. 녹이 슨 차단막은 곱게 색칠하며 단장했던 순간이 가장 좋았던 때라 하며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마저 나에겐 너무도 평화롭고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이름 없는 그곳에 근사한 이름이라도 지어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곳의 냄새, 그곳의 빛깔들,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생각나게 할 이름으로.



2014년 여름, 오츠크해가 보이는 건널목
2014년 여름, 오츠크해를 다라 난 기찻길



시레토코 고개에서 보았던 어느 여행자의 자전거에는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있었다. 단출하고 홀가분했던 자전거는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도 자전거 주인처럼 가벼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커다란 캐리어에 담긴 많은 것보단, 여행 중 느끼는 소중한 것들을 담을 마음의 넓이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여행은 나를 아름답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여정중 보고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을 내 마음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멈추고 언제든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 그것은 용기 내어 가벼이 떠난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기도 할 것이다.



2014년 여름. 시레토코 고개
2014년 여름. 시레토코 고개에서 바라본 풍경
2014년 여름. 시레토코 고개에서 바라본 풍경



어느 곳에서든 푸른 하늘과 숲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자연이라 불리는 그것들은 사람들의 정성에 따라 그 감동이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다. 자연에 대한 정성은 멋지게 꾸민 인위적인 것이 아닌 얼마만큼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는가 하는 것이다. 언제 부턴가 우리는 발전시키는 것보단 보존하는 것을 더욱 참아 내기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다. 그대로 놓아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자연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정성이다.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된 시레토코의 5 호수 산책로는 나무로 만든 최소한의 길로만 인간의 흔적을 내고 있었다. 이곳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장시간 걷는 트레킹 코스가 있었고, 트레킹 중에는 야생곰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랑달랑 소리 나는 방울을 달고 다닌다. 방울소리를 들은 곰이 사람이 지나는 것을 알아채고는 사람에게 접근을 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곰을 두려워하듯, 곰도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 나무와 풀, 자연의 모든 것들이 우선순위가 없이 공평하게 공존하는 곳. 5 호수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 앞에서 푸르른 녹음처럼 공손해지고 싶었다.

 


2014년 여름. 시레토코 5호수 산책로
2014년 여름. 시레토코 5호수 산책로
2014년 여름. 시레토코 5호수 산책로
2014년 여름. 아칸국립공원 이오잔. 이곳에 유황이 끓으며 끊임 없이 연기가 올라는 유황산이 있다.
2014년 여름. 아칸국립공원 이오잔의 유황산


여행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본 후 그곳에 갔을 때 실망하는 이유는,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로 인한 복잡함과 방송에서나 가능한 하늘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풍경만큼 감동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호로 고개 정상에서는 드론이 되어 날아다니듯 모든 세상이 넓게 보였다. 호들갑을 떨 만큼 커다란 소리를 내며 감탄할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조용하고 나지막이 감탄을 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굿샤로 호수와 초록의 사이로 굽이쳐 난 길들이 보였고, 바이크들이 길을 달리고 있었다. 허리춤 높이의 풀들이 펼쳐진 벌판엔 노루가 풀을 뜯고 있었고, 행여 놀라기라도 할까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웅장했고 푸른 물결이 부드럽게 굽이치던 비호로 고개.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에 감동은 더욱 컸다. 그리고 선입관을 갖고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내 마음이 창피했다. 흔히 여행은 인생 같은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패키지가 아니듯 똑같은 여행지라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기에 여행은 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행은 과감히 떠나서 과감히 부딪혀 봐야 하는 것이다.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에서 바라본 굿 샤로 호수와 그 안의 섬인 나카시마 섬.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 풀숲 어딘가에서 노루가 풀을 뜯고 있었다



도동의 아픔


누구 든, 어느 집이든, 어느 나라, 어느 곳이든 아픔이 없는 사람, 없는 곳은 없다. 마냥 행복해 보이고 화려해 보여도 모두들 저마다 안타까운 아픈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다. 도동에도 그런 사연이 있었다.


아이누 부족은 북해도에 들어온 일본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많은 억압과 아픔을 겪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북해도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그들에게 했던 억압을 숨겨왔기에 대다수의 일본인들도 북해도 원주민이었던 그들의 존재를 잘 모른다고 했다.


이국적인 모습이었던 그들은 아칸 호수 근처에서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높게 솟아 오른 안테나가 보였다. 안테나 뒤로 보였던 검은 구름은 밝음보단 그들의 힘들었던 삶을 보여 주는 것 만 같았다. 그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상냥하며 순박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의 아픔은 숨길수가 없었나 보다.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그 밝음 뒤엔 보일 듯 말 듯 지나온 시련 속에 섞인 슬픔을 느낄 수 있었기에.



2014년 여름. 아이누 마을에 높이 솟아 있는 안테나
2014년 여름. 아이누 마을의 상징인 올빼미
2014년 여름. 아이누 마을에서
2014년 여름. 아이누 마을 거리



꽃과 언덕


도동에 오기 전 북해도의 여름을 생각하며 떠올렸던 것은 울긋불긋 양탄자처럼 피어있는 라벤더 꽃밭이었다. 하지만 도동에서는 융단처럼 깔려 있는 보라색 라벤더는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노랗게 피어있는 해바라기들과 어느 농가의 빨간색 지붕이 보색을 맞추듯 지평선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와 맞닿아 있는 일본이 아닌 북유럽의 조용한 시골 마을 처럼.


벌판을 가득 메운 해바라기 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에게 하나의 시선으로 웃어주며 반겨주고 있었다. 따스한 노란빛은 하늘빛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을 그려 한여름의 더위를 화사하게 해 주었고, 그 덕분에 조금은 덥게했던 열기를 잊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해바라기 꽃밭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달착지근한 과일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취기가 오르듯 나는 점점 노란빛에 취하며 물들여졌기 때문이다.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의 해바라기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의 해바라기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의 해바라기



저 나무는 언제부터 저곳에 서 있었을까? 도동에는 푸른 언덕과 하늘을 경계로 한 줄로 서있던 나무들이 많았다. 나무가 서있던 지평선은 곡선처럼 부드러웠고 언덕은 완만한 경사가 있는 넓게 펼쳐진 평야의 모습이었다. 듬성듬성 일렬로 세워진 나무들은 구름이 떠있는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바라보는 이의 눈을 더욱 크게 해주었고 신선한 여름 풍경의 점들이 되어주고 있었다. 넓은 평야는 초록과 갈색이 되어 떠남과 남음으로 구별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푸르름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듯했다. 어느 사진에서 본 듯한 풍경. 직접 보니 더 좋았던 풍경. 먼 훗날까지 보고 싶게 될 거라는 예감을 하며 풍경의 한순간 한순간들을 기억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 메르헨의 언덕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 어딘가에서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 어딘가에서


2014년 여름 북해도 도동 어딘가에서



도동의 빛


날씨는 조금 흐렸고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득했다. 서늘한 온도와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선명하게 산란되는 빛들은 반짝거리며 뜻 모를 그리움들로 변해 내 마음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도동의 빛은 그것들이 비치던 곳에서 날 한참이나 머무르게 했다. 그것들은 지나간 시간, 지나간 공간, 지나쳤던 내 삶의 모든 것과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게 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사한 정답이라도 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답은 없었다. 그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빛은 더욱 이쁘게 호수를 비추고.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나는 한참이나 벤치에 앉아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2014년 여름. 굿샤로호수.
2014년 여름. 굿샤로호수.
2014년 여름. 굿샤로호수.
2014년 여름. 굿샤로호수의 오리배.
한참동안 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비호로 고개에서도 마주 했다. 언덕을 오르던 중 다가온 빛은 구름과 나무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하고 있었다. 빛은 섬세한 선으로 나무들의 모습을 만들었고, 나무들은 이쁜 옷을 곱게 차려입은 듯 흐릿한 하늘 너머를 배경으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빛은 나무들의 선이 되어 명료하고 커다란 형상으로 보이게 했고,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큰 숲을 보아야 된다고 말하듯, 나무들의 너른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난 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 한참이나 길 위에 서서 빛 아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훗날까지 간직할 나의 나무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에서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를 오르던중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를 오르던중
2014년 여름. 비호로 고개를 오르던중



빛은 희망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곳에서의 빛은 그 존재가 더욱 소중하고 절실하다. 아바시리 형무소에서 보았던 빛은 세상의 영역을 선명히 알려주기라도 하듯 한없이 밝게 비치고 있었다. 창살 너머로 달려들어오는 빛은 작은 공간에 갇혀 그 빛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을 실감나게 했다. 빛은 매우 밝았고 가로막힌 창살 너머로 보이던 연록의 색은 빛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었다. 죄를 지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저 빛을 바라보며 온몸에 빛들을 맞이할 날을 끊임없이 염원했을 것이다. 결국 그 빛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빛일거라 생각하며.



2014년 여름. 아바시리 형무소의 빛


떠남


마지막 하루를 묵었던 아바시리의 호텔. 이곳은 여름 한철에만 운영을 한다고 했다. 겨울엔 춥고 눈이 많이 오기에, 관광객이 많은 삿포로와는 달리 도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추운 겨울엔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 않기 때문이다.


숙소에는 한국말로 안내를 하는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분이 계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호텔의 여주인이었고 놀랍게도 한국분 이셨다. 젊어서 이 호텔의 주인과 결혼을 했고 됴쿄도 규슈도 아닌 북해도 동쪽 아바시리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마지막 날 그녀는 한국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기모노를 입고 있던 그녀였지만 차창 너머로 보였던 그녀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사라진 뒤에도 그녀는 홀로 선채 떠나는 우리를 한참이나 배웅을 해 주었다. 그녀의 모습이 점점 작게 보일수록 고국을 그리워하던 그녀의 마음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북해도 도동에서의 마지막 날. 떠나가는 고국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그녀를 나는 점이 될 만큼 멀어질 때까지 바라 보았다. 아주 선명하고 절실했던 고향의 그리움을 느끼며.



2014년 여름. 도동에서 묵었던 마지막 숙소
2014년 여름. 도동에서 묵었던 마지막 숙소
2014년 여름. 도동에서 묵었던 마지막 숙소






인연


몇 해 전 여행이었지만 저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의 인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정원 들꽃 속에 피어있던 라벤더는 멀리 한국에서 온 누군가의 손에 한줄기가 꺾이고 꽃은 다시 저에게 건네져 배낭 속 작은 주머니에 담기게 됩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배낭 주인은 꽃을 잠시 잊고 있었고 일상에 돌아와서야 그 존재를 발견하고는 도동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꽃을 간직하게 됩니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꽃은 저의 책상 한쪽에 곱게 놓여 있습니다. 향기가 없어졌는지 걱정하며 코 끝에 대 보지만 설마 했던 걱정은 덧없어지고 맙니다. 향의 짙음은 줄어들었지만 은은한 내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윽하니까요. 하지만 몸은 많이 말라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기 쉬워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연은 보살핌이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해지고 있습니다.


꽃과의 인연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 조용하고 여유로왔던 그 꽃이 있던 곳에 다시 찾아갈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꽃이 그때까지만이라도 온전히 제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꽃과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여행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픈 저의 마음이니까요. 그리고 꽃도 어쩌면 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2014년 여름. 들꽃들과 함께 있던 라벤더
사진은 작년 11월에 찍었던 사진 입니다.  두해전 북해도 도동에서 나에게 온 라벤더는 지금도 여전히 향기를 간직한채  저의 책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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