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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0. 2016

그리움의 이유는 '그냥'

대평포구를 바라보며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유월에 제주를 찾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간 것이 아니기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동료들과 차를 타고 길을 나섰죠. 동료들은 저에게 추천할 곳이 있으면 소개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평포구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가면 무엇이 좋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 그냥 좋은 곳이에요...."


마을로 들어서니 길에는 큰 건물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기억 속에 있던 대평 슈퍼는 깨끗한 간판이 있는 편의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식당 안 창밖으로 들풀이 눈에 들어옵니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자 아주머니께서 무얼 그리 열심히 찍느냐 하시며 물어보십니다.


"저 창문 넘어 꽃이요"


"아이고! 저 꽃 때문에 올봄 고생했어요. 꽃씨가 어찌나 날리던지..."


아주머니는 외래종으로 들어온 풀인데 꽃씨가 날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창문 너머 보이는 반듯반듯한 집과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 화려한 카페가 가득한 것처럼 아주머니를 힘들게 했던 꽃씨제주를 변하게 하는 그런 존재 같았습니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예전의 대평리가 좋았다고요.



대평리. 2016. 6



대평리는 변화를 맞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과거와 현재가 섞여, 전에는 없던 식당도 보이고 게스트 하우스도 보였습니다. 알록달록한 이름표가 붙은 강아지 집도, 노란 안장의 빨간 자전거도, 그리고 어느 북유럽 풍의 파란 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색했습니다. 왠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달콤한 사탕처럼요.


어느 시골학교에 아이가 전학을 옵니다. 아이는 읍내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간 후 또다시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곳에 있는 큰 도시에서 살았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온 첫날. 전학 온 아이도,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도 서로 낯설기는 매 한 가지였습니다. 아이와 아이들은 서로를 궁금해했지만 모두 쉽게 말을 걸 수 없었죠.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서먹함은 조금씩 조금씩 동심 속에 묻혀 구별을 할 수 없게 되었죠. 그렇듯 결국 이곳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탕이 너무 달콤하다고 하여 성급히 깨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천천히 녹여 먹어도 사탕은 충분히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대평리. 2016. 6
대평리. 2016. 6
대평리. 2016. 6



저의 외 할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름 외갓집 정원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했었. 맨드라미, 봉선화, 단물을 쪽쪽 빨아먹던 사루비아, 아침 이슬이 송글송글 모여 또르르 굴러갈 만큼 넓은 잎이 있는 꽃.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곱게 빛나던 붉은 장미. 할머니는 검은 반점이 듬성듬성 있는 가는 손으로 매일매일 잡풀들을 솎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솎아낸 잡풀들이 정원 한편에 수북이 쌓이곤 했었죠. 엄마와 이모들은 이제 제들끼리 알아서 크도록 놔두라고 하셨지만 할머니는 그러시지 못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매일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계속해서 꽃을 가꾸셨습니다. 골목길 검은 돌담 아래 장미가 피어있습니다. 꽃을 보니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그토록 꽃을 좋아하셨던 저의 외할머니처럼 저 꽃도 부지런하신 제주 할의 손에 들려 담장 밑에 곱게 심어졌을 것입니다. 평생 바다에서 물질과 밭일로 거칠게 된 손이지만, 깨끗함과 정성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던 당신의 손으로.



대평리. 2016. 6


바다엔 운무가 가득합니다. 적막함은 뿌연 농도만큼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박수기정이 모든 것을 조용히 보듬어주고 있습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든든한 형제 섬도 여전히 그 자리입니다. 그 풍경들을 보니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날은 비가 왔고 새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곳을 향해 길을 걷던 저는 바람이 너무 강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을 했고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안도와 함께 비 오는 포구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그리움으로 변할 란 걸 알아채지 못한 채,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죠. 결국 예정에도 없이 이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 개인 포구와 바다, 쉼 없이 반짝거리며 쏟아지던 햇살을 보며 해변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 만이 간직하고 싶었던 풍경이 되, 늘 보고 싶은 그리기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리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인가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를요. 누군가에게 그리움을 주기 위해선 아낌없이 많은 것을 주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받기만 했을 뿐 좋은 것을 주지는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문득 창피한 생각이 듭니다.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 줄은 몰랐던 내가 아니었는지.


 

대평포구. 2016. 6



" 당신은 내가 왜 좋아요?"

"그냥"

"네? 무슨 대답이 그래요?"

"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냥 당신을 바라만 보아도 좋아요...."

" 그냥요? "

" 네 그냥요 "


등대 위로 둥근 테 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가 보입니다. 그녀를 보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제 시선은 그녀가 바라보는 하늘을 향했다가, 바다를 향했다가 갈팡질팡 합니다. 여인은 먼 곳에서 볼 땐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였고, 가까이서 볼 때는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가까워올수록 하나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희망'


무언가 확실히 바라고 염원하는 구체적인 그 무엇은 아니지만, 그녀를 보면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볼 수 있고 그냥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은 없더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왜 제가 이곳을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대평포구. 2016. 6
대평포구. 2016. 6


동료들이 말합니다.


" 뭐 그냥 그런 조그만 포구네. 그래도 저 절벽(박수기정)은 쫌 멋이 있다. 그래도 뭐 그냥 그렇다. 조용하기는 한데.... 더운데 시원한 차나 한잔 하자구 "


차를 마시며 이곳이 왜 좋으냐는 동료의 물음에 그냥이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동료가 말한 그냥과 제가 대답했던 그냥은 다릅니다. 저의 그냥은 가장 강력하고 함축적인 의미로 제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죠.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늘 그리움에 묻혀 삽니다. 유년의 기억, 즐겁던 학창 시절, 결코 헤어질 것 같지 않았던 연인,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거리, 어느 장소에선가 스치듯 지나갔던 풍경들과 그곳에서 마주했던 인연들. 누군가 저에게 왜 그것들이 그리운지 묻는다면 그냥이라는 단어로 대신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은 마주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이라는 말에 가려 있는 어쩌면 평생을 마음속에 갖고 가야 할 애잔함이 있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포구를 바라봅니다. 저에게 그냥 좋기만 한 대평리도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있는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인형처럼 이쁜 사람보단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이유 없이 그냥 좋아지는 사람처럼, 저에게 대평리는 그런 곳입니다. 고운 시심이 가득한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냥 그 시인의 모든 것이 좋아지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그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그 시인을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그리워하듯 말입니다.



대평포구. 201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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