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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pr 29. 2016

산방산과 함께 걷는 길, 제주올레 10코스

내 마음엔 아직도 내가 걸었던 길과 산이 내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봄비 답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렸다. 젖은 신발과 질척거리는 길은 평소보다 힘을 곱절로 들게 했다. 우비에 떨어지빗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의 느낌이 고스란히 내 몸에 전해졌다. 왠지 자연인이 된 느낌이었다. 빗물이 우비에 튕겨지며 후둑후둑하는 소리를 귓가에 전해준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크게 들렸던 빗소리였던 것 같다.


화순리 마을에 들어섰지만 바다에도 마을에도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어 도착한 민박집. 주인 할머니께선 처음 보는 나를 이제 오냐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미리 예약을 했던 터라 비는 내리는데 때가 돼도 도착하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한다. 너무나 고맙고 정이 많으신 할머니의 훈훈한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린 후 짐이라 할 것도 없는 배낭을 들고 하루를 묵어갈 방을 안내받았다. 방은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않았고, 그래서 였는지 깨끗한 침구들과 훈훈한 공기는 온몸을 노곤하게 했다. 그리고 바닥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단 한 번도 뒤척거리지도 않고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눈을 뜨니 먼저 천장이 보였고 방 한쪽에 있는 작은 창문도 보인다. 그 너머를 바라 보니 어제는 비 때문에 눈에 담기지 않았던 마을과, 멀리 우뚝 서있는 둥그런 산이 보였다. 오늘 하루 나의 길동무가 되어줄 커다란 산. 그렇게 산방산은 영험한 기운을 품으며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채비를 하고 금모래 해변에 서니 아침 햇살머금은 모래들이 금빛처럼 맨들 거리며 짝거리다. 너무 맨 초롬 하여 차마 밟기 미안했지만 한 발짝을 내딛자 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찰지고 부드러운 느낌이 전해진다. 그 느낌이 좋아 넋을 놓고 걷다 뒤를 돌아보았다. 눈 부신 해변에 남아 있는 나의 발자국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나에게 말하고 있다. 움푹 파인 깊이만큼 천천히 가라고.


삐뚤빼뚤 걸은 발자국들보니 생소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저런가 싶기도 하.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굳이 직선을 고집하며 아등바등하면 왠지 억울하고 후회될 것 같. 삐뚤빼뚤 가더라도 마음 닿는 대로 보고 느끼며 걷는 것이 후회되지 않을 것이다. 직선은 정직함과 올바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때론 삐뚜루 가야 그 재미가 더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 길 위에선 그러고 싶었다.


화순 금모래 해변
저 발자국 깊이 만큼 천천히 걸어야 하는 길


아무리 문명이 발전한다 해도 시간의 힘을 빌어 만들어진 자연 창조물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들을 볼 때면 늘 놀랍고 경외스럽다. 수많은 세월 동안 옥빛 바다와 함께 만들어진 예술 같은 주상절리. 우리가 살아온 시간보다 오랫동안 바닷물과 해풍을 맞으며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들이다. 중문의 그것 보단 작지만 깎아지를 한 모양의 아기자기한 주상절리와 멀리 보이는 용머리 해안의 풍경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옆을 지나며 가까이서 보니 사람이 아닌 신이 만든 듯한 자연의 정교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제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곳에 숨겨진 많은 비경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다니면 다닐수록, 보면 볼수록 더욱 매력적이고 신비한 섬인가 보다.



주상절리가 있는 바당길과 한적한 숲길을 지나 산방연대로 향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한 곳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등성이에 서니 내가 걸어길이 한눈에 보인다. 길을 시작했던 화순리와 그 너머 대평리의 박수기정까지. 아마득히 멀리 보이는 것이 내가 저 길을 걸어왔나 싶은 생각이 든다. 걸을 땐 몰랐는데 참 많이도 걸었던 길이다. 지나고 보면 한 발작 한 발작 디디며 보았던 모든 것들이 소다. 그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연들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나의 삶을 뒤돌아 보고 성찰하였다. 그렇다 해도 저 멀리 보이는 내가 걸어온 길만큼 내 마음도 성숙되었을까?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배우며 느낄 의미들이 너무도 많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은 것처럼 내 마음도 그만큼 더 커져야 할 것이다.


내가 걸어온길. 화순리도 보이고 그너머 박수기정도 보인다.


낯선 상황의 궁금함 뒤엔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이곳에 표류하게 된 네덜란드인 하멜. 우리를 바라보던 파란 눈과, 그를 바라보던 까만 눈. 모두 놀라고 두려웠을 것이다. 조선 효종 때 하멜은 이곳 해안에 표류하여 서울로 압송을 당한 후 조선에서 13여 년을 지냈다고 한다. 본국에 돌아가서는 하멜 일지를 썼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가 유럽에 최초로 알려지게 되었다. 산방연대 바로 아래에는 하멜 기념비가 있고 그 아래 평지에는 하멜 상선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하멜이 타고 왔던 배의 모형과 하멜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산방연대에서 바라본 하멜 기념비와 전시관


아까부터 벤치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좀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좀 이상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형제섬이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여유롭게 앉아 있는 하멜의 동상이었다. 그 형상이 너무 자연스러워 왠지 그의 곁에 앉아 정다운 표정으로 사진에 담아야 할 것같다. 하지만, 주변에 사진을 부탁할 지나가는 이도 없고, 어떤 서양인 동상 옆에서 내가 나를 찍는 것도 숙기 없는 나로서는  어색한 일이다.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여행 중 운은 계획되지 않은 변수이다. 그것은 여행의 맛을 살리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로 실망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은 복불복 일수 있다. 우연히 생각지 못한 멋진 풍경이나 경험을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지만, '금일 휴업', '내부 공사 중'이라고 쓰인 야속한 팻말처럼 기대하며 작심하고 찾아갔지만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던 여행은 두고두고 아쉬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 여행도 때론 복불복 같은 여행이 되어 기뻐할 수도 안타까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곳에는 용머리 해안이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은 절경이 있는 해안으로 수천만 년 동안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이 있는 곳. 나는 이곳에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용머리 해안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보질 못했다. 이유는 기상이 안 좋거나, 물때를 잘못 만났거나, 아니면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입장을 하지 못했거나. 난 그래서 용머리 해안이 복불복 같은 곳이다. 오늘은 어떨까?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가보니 아직 개장 전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오늘도 볼 수가 없. 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여러 번 읽으면 이전엔 깨닫지 못했던 의미들이 새록새록 찾아지듯, 안타까운 여행이라 해도 그 이유로 다시 올 수 있다면 더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해변에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 (어느해 가을)
해변에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어느해 봄)


용머리 해안은 보지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 줄 차선책은 있다.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그 너머로 든든한 산방산이 자리 잡고 있는 풍경. 북유럽의 어느 나라는 자연의 풍경이 너무 이뻐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예술 같은 사진이 찍히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내가 생각 하기엔 이곳이 그런 곳이다.


예전부터 산방산을 바라보며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결론은 산방산은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오를 수 있는 길은 중간에 위치한 산방굴사까지만 길이 나 있다. 동네 주민 누군가가 저 산을 올랐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아마도 어찌어찌 흘러 다니던 누군가의 근거 없는 무용담이라 생각한다. 행여라도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가파른 절벽만 있을 뿐 오를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산방산은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산이다.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아야 산의 아름다운 진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산방산은 길을 걷는 내내 내 뒤에서 나를 지켜주는 길동무가 되어준다. 해변을 걷든 도로를 걷든 힘들고 지칠 때에도 뒤에서 나를 격려해주고 응원해 준다. 그래서 올레 10코스는 산방산과 함께 하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캔디에겐 테리우스가 있듯이 걷는 내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은 산방산이 함께하고 어디서 보든 그 모습은 든든하고 정겹기만 하다.


항상 내뒤에 있던 산방산


누군가는 올레 길중 아스팔트가 있는 길을 걸을 땐 흙길로만 되어 있는 줄 알았던 길에 실망을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사계 해안 도로를 걸을 때는 그런 불평을 할 시간이 없다. 뒤로 보이는 산방산, 바다에 떠있는 형제섬, 그리고 푸른 바다를 보며 걷는 길. 그래서  이 길 위에 서면 딱딱한 아스팔트 길도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차를 타고 사계 해안길을 지난다면 차를 잠시 세우고 여유롭게 걸어보자. 스쳐 지날뻔한 풍경들을 고스란히 두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형제섬


뒤에 따라오는 산방산과 형제섬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송악산 입구에 다다른다. 송악산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이루어진 산이다. 산 중앙에는 분화구가 있는데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있다. 이곳 산 주변은 경치가 좋아 여러 드라마를 촬영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산 아래 해변에는 일제시대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 있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송악산에 오른다. 단거리 육상선수가 전력질주를 할 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가야 할 만큼 바람이 세다. 경사가 가파르고 쉽게 부서지는 흙 때문에 미끄러지기가 일수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자 잠깐의 힘듦은 당연히 치루어야 할 대가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푸른 바다 뒤에 서있는 산방산과 그아래 길게 드러누워 있는 용머리 해안. 무인도인 형제섬이 다정히 서로를 바라보고, 그 멀리에는 한라산이 구름을 뚫고 서있다. 바다 빛이 너무 고와 이쁘게 솟아 있는 산방산 앞 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 오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쉬이 자리를 뜨기가 힘들다. 그렇게 송악산은 제주 남쪽의 모든 풍경을 품에 안고 있는 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송악산에 오를 수가 없다. 송악산을 보호하기 위해 2015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정상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여 현재는 둘레길만을 걸을 수가 있다.


송악산 입구
바다로 풍덩 빠지고 싶게 만드는 풍경
송악산에서 바라본 형제섬

 

제주는 아픔이 많은 섬이다. 대표적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4.3 사건이 있고 일제 시대에는 일본군의 전진 기지로 사용되었던 동굴이나 요새, 비행장을 우리 주민들이 동원되어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4.3 사건의 비극은 이곳 대정에서도 있었고, 섯알오름에는 그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있다. 일제시대의 동굴은 7코스가 시작되는 외돌개의 황우지 해안 열두 굴과, 10코스의 송악산 입구에도 인공으로 만든 동굴이 있다. 그리고 이 곳엔 알뜨르 비행장이 있다. 알뜨르는 ‘아래 벌판’이라는 의미로 농사를 짓던 목초지였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비행 장으로 건설 후 중일전쟁시에 일본군의 전초 기지로 쓰인 가슴 아픈 곳이다. 그래서 이곳엔 당시의 비행기 격납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너무도 평화롭게 보여 더욱 슬프게 보이는 걸까? 비행기 한대가 들어갈 격납고와 멀리 보이는 산방산을 바라보니 왠지 슬픔이 밀려온다. 이곳에서 강제 노역했던 사람들은 그때도 저 자리에 있었을 산방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항상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제주이지만, 드넓은 벌판 너머의 산방산과 비행기 격납고의 대조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가슴이 저려온다.


평화로운 풍경은 때로는 더욱 슬픈 그때를 생각 나게 한다
격납고가 보이고 저 멀리에는 모슬봉이 보인다


제주에는 돌이 많다. 그래서 밭을 일구기가 힘들다. 땅을 파면 팔수록 날카로운 돌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래서 기계도 함부로 쓰기가 어려워 사람의 손이 많이 간다. 사람들은 밭을 일구다 힘이 들면 저 바다에서 들판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그 고된 일의 결과로 들에는 가지런히 심어놓은 밭작물들이 파란 싹을 틔우며 올라오고 있다. 스프링 쿨러가 '슉슉슉' 소리 내며 물을 뿌리고 젖은 흙에서 나는 냄새는 바람 냄새와 섞여 계절의 냄새가 되어 내개 다가온다. 그 옆으로는 느림의 미학을 표현이라도 하듯 구부러진 아스팔트 길이 바다를 향해 나있다. 그 풍경들을 마음에 담아 본다. 픔이 있는 땅이었지만 지금은 그 고통들을 이기고 선 땅. 그리고 제주의 사람들. 아마도 저 멀리 보이는 산방산은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뒤를 바라보니 들판 너머로 여전히 둥그런 산방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산은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 조심히 잘 가라 하며 나를 배웅하는 듯하다. 내 눈은 흘깃흘깃 산을 바라보면서도 내 마음은 그것을 애써 숨기며 난 아직 헤어질 때가 아니라 하며 모른 체 한다. 하지만 이제 길은 얼마 남지 않았다. 모슬포가 가까워 온다.  


솔나무 숲을 지나고 하모 해수욕장을 지나니 모슬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바다도 여행자의 여정이 끝나감을 아는지 등대와 함께 느슨한 오후의 빛으로 자신을 물들이고 있다. 이럴 땐 길의 끝에서 걷는 이는 마음을 더욱 아쉽게 만드는 제주의 바다가 야속하다.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옥빛 바다. 제주의 바다는 늘 여행자들에게 기쁘고, 행복하고, 아쉽고, 보고 싶은 마음에 클라이맥스를 가져다준다. 단순히 걷고 보았을 뿐인데도 마음이 벅차오르게 말이다.

 

모슬포로 가는 길


밀면은 본래 부산이 유명하다. 그럼에도 올레 10코스 종점인 모슬포에는 밀면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빠르게 식당으로 향한다. 물 밀면 한 그릇과 수육 한 접시. 시장한 배에 수육 한 점을 밀면에 싸 먹으니 정말 맛이 좋다. 2대째 내려오는 이 식당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이외에도 모슬포는 자리돔의 주산지라서 여름에는 자리물회로도 유명하고 방어의 주산지이기도 하여 가을에는 방어 축제도 열린다.


밀면과 수육


식사를 마치고 정류장에서 제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을 하자 좀 전까지 내가 걸었던 길이 창밖으로 군데군데 보이고 어느새 버스는 산방산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오늘 하루 종일 내 뒤에 있던 둥그렇고 커다란 산이 점점 내개 다가온다. 버스를 잘못 탔나 싶었지만 버스는 산방산 입구에서 방향을 틀어 제주 방향으로 달린다. 이젠 정말 산과 이별을 하나 보다.


자꾸만 차창밖을 쳐다본다. 버스가 제주를 향해 달릴수록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차창밖을 보며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하루 종일 내 뒤를 쫓아오던 길동무는 보이지 않는다. 산이 내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아직 올레길 위에 남아 있던 건지. 버스가 속도를 낼수록 내 눈은 더욱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직도 내 마음엔 오늘 걸었던 길과 산 내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현재 제주올레 10코스는 1년간 휴식년 중입니다. 기간은 2015년 7월 1일부터 2016년 6월 30일까지 입니다. 그래서 올해 7월부터는 다시 10코스를 걸을 수 있습니다. 올레 10코스는 정방향으로 걸으면 산방산이 뒤에서 따라오고, 역방향으로 걸으면 산방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비록 송악산 정상은 통제가 되어 오르지 못할 지라도 둘레길을 걸을 수 있고, 아름다운 산방산과 형제섬, 아픔이 있는 알뜨르 비행장 등 슬프지만 아름다운 10코스의 풍경은 예전처럼 멋질 거라 생각합니다. 길이 열린 후 이 길을 걸으신다면, 이 길 위에 서신 모든 분들이 놀멍, 쉬멍, 간세다리 걸으시며, 행복한 올레길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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