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뇌를 바꾼다.
"책이 뇌를 바꾼다"는 명제는 더 이상 추상적인 격언이 아니다. 이는 신경과학과 독서 경험이 일관되게 증명하는 사실이다. 독서를 통해 뇌 구조 자체가 재편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가 시사한다. 이 뇌의 변화 과정은 흥미롭게도 낡은 경운기에 시동을 거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경운기에 시동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시동 핸들을 잡고 일정 속도가 붙을 때까지 팔의 힘으로 끊임없이 돌려줘야 한다. 한 번, 두 번 돌리다 힘에 부쳐 멈추면 엔진은 이내 잠잠해지고 만다. 다시 시동을 걸려면 처음부터 다시 일정 수준의 속도, 즉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경운기는 스스로의 동력으로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뇌를 '독서하는 뇌'로 바꾸는 과정도 이와 정확히 같다. 어쩌다 한 권, 두 권 책을 읽는 것으로는 뇌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량과 밀도가 충족되어야 그제야 뇌는 독서에 최적화된 회로를 구축하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임계점은 어느 정도일까? 성공한 인물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지대넓얕의 채사장은 3년 동안 무려 1,000권을 읽고 세상을 꿰뚫는 깊은 통찰력을 얻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짧은 기간 동안 3년에 4,000권에 달하는 책을 압축적으로 읽으며 사업의 핵심 아이디어와 비전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들의 경험을 종합해 볼 때, 뇌를 변화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독서 임계점은 1년에 약 300권 정도로 보인다. 만약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채사장이나 손정의처럼 뛰어난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면, 1년에 1,000권 이상의 독서가 요구될 수도 있다. 이는 하루에 3권 이상을 읽어야 가능한 수치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단기간에 집중하여 압축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뇌의 시동을 가장 빠르게 거는 방법이다.
나 또한 이 '경운기 시동'의 원리를 몸소 경험했다. 나의 독서 습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되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내가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일부러 도서관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어주셨다. 덕분에 나는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하루를 '살다시피' 했다.
특히 그때 나에게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 있었다. 나는 도서관의 인간 심리 및 자기 계발 코너 한 면에 꽂힌 모든 책들을 다 읽어보겠다는 다소 무모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물론 물리적으로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코너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약 300권의 책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은 노트에 옮겨 적는 필사도 함께 했다.
그 1년은 나의 뇌가 독서에 최적화된 상태로 '시동이 걸리는'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확신한다. 그때까지 파편적이고 단편적이었던 사고방식은 수백 권의 책을 통해 얻은 다양한 관점과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입체적인 사고로 발전했다.
과거 책이 귀했던 시대에는 독서 방식이 달랐다. 새로운 책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뇌를 바꾸는 방법이었다.
세종대왕은 즉위 2년째 되던 해, 우부승지로 승진한 윤형이 세종에게 인사를 드리며 한 책을 30번 읽었다고 아뢰자, 세종대왕은 "나는 여러 책을 1백 번씩 읽었다"라고 답하며 신하의 노력을 격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는 한 책을 '일억 번' 읽었다는 과장된 기록을 남길 정도로 깊은 반복 독서를 강조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깊이 있는 반복이 뇌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현대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게 섭렵하며 임계점을 돌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다.
어떤 시대든 핵심은 같다. 뇌라는 엔진에 일정 수준의 강력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뇌에 끊임없이 정보를 입력하고 사고를 훈련시켜야 한다. 그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통찰과 아이디어를 얻고,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1년쯤 독서에 미쳐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