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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숙제를 풀지 못하다

중2의 과학 과제

주말 내내 아이가 숙제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금방 끝나겠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교과서를 뒤적이고, 한숨을 쉬기를 반복했다.


간단한 숙제인가 했는데, 숙제 내용을 보니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의 과학 숙제는 딸의 노트북까지 동원하는 가족의 과제물이 되어 버렸다.


아들의 과학 과제는 이랬다.

- 뼈를 생성하는 앙금 생성 반응식은?
- 굴 껍질을 생성하는 앙금 생성 반응식은?
- 거북이 등껍질을 만드는 앙금 생성 반응식은?


몇 가지 앙금 생성 반응식을 찾는 과제가 더 있었다. 종유석, 산호, 달걀 껍질까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물질들의 앙금 생성 반응식을 찾아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과학을 배우면서 들어본 과제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앙금 생성 반응식은 양이온과 음이온을 주고받아 결과물로 앙금이 생긴다는 얄팍한 지식 정도였다. 염화나트륨 수용액과 질산은 수용액을 섞으면 염화은 앙금이 생긴다는 식의,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예시들 말이다.


한글로 열심히 앙금 생성 반응식을 찾았지만 대부분 교과서에 나와 있는 앙금 생성 반응식이 전부였다. 실생활에 나오는 경우는 몇 가지 언급되지 않았었다. '생체 내 칼슘 반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도 막연한 설명만 나올 뿐, 구체적인 화학 반응식은 찾기 어려웠다.


토요일 저녁, 아이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식탁에 앉았다. "아빠, 이거 정말 중학교 과제 맞아요?" 아이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나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에는 아내와 딸까지 합류했다. 딸이 자신의 노트북으로 영어 자료를 검색해보겠다며 나섰다. "Bone formation chemical equation"이라고 검색하니 생화학 논문들이 줄줄이 나왔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대학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칼슘 이온과 인산 이온이 반응해서 수산화인회석이 된다는 설명은 나왔지만, 그것을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식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선생님이 정확히 뭘 원하시는 걸까?" 아내의 질문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물학적 과정을 화학 반응식으로 단순화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반응식이 교과 과정 어딘가에 명시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들은 검색해서 찾은 몇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답을 정리했다. 칼슘 이온과 탄산 이온이 반응해서 탄산칼슘이 된다는 식으로. 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었다.


주말이 끝나갈 무렵, 나는 생각했다. 문제가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풀기에는 선생님의 숙제가 과한 것 아니었을까?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탐구심을 키우고 스스로 찾아보게 하는 것도 좋지만,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접근 가능한 자료조차 찾기 어려운 과제라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좌절감만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주말 내내 고민했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부모인 우리도 도와줄 수 없었다.


배움의 즐거움보다 무기력함을 먼저 배우게 되는 건 아닐까?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따라 그 질문이 무겁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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