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 사모님
동료 네 명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40대 중후반의 남녀 넷.
그 순간, 식당 직원의 시선이 우리를 스캔하듯 스쳐 지나갔다.
마치 눈빛 하나로 우리를 어떤 '역할'로 분류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어요?”
테이블에 앉자마자 들려온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사장님. 나를 부르는 말이 맞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분명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사모님, 찌개는 오래 끓어야 하니까 15분쯤 놔두셔야 해요.”
이번엔 옆자리 여자 동료에게 건네진 말이었다.
사장님과 사모님.
우리는 그저 같은 회사 동료일 뿐인데,
순식간에 사장과 사모가 되어버렸다.
순간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어색한 거리감이 섞여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 든 성인을 부르는 적당한 호칭이 없다.
학생도 아니고, ‘아저씨’나 ‘아줌마’라 하기엔 무례해 보인다.
그렇다고 “저기요”라 부르기엔 너무 직설적이다.
그래서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개발했다.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는, 가장 안전한 호칭.
손님을 모두 ‘사장님’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게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물론, 식당에 오는 사람이 모두 사장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고,
얼굴 어디에도 ‘대표이사’라는 직함은 없다.
그런데도 식당에 가면, 카페에 가면, 미용실에 가면
우리는 자동으로 ‘사장님’이 된다.
함께 온 동료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눴다.
어쩌면 나만 유난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호칭을
그저 사회적 윤활유로 받아들인다.
진짜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런데 나는 자꾸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사장님’이라는 단어 속에는
나이의 무게와 사회적 서열이 함께 녹아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실체가 아닌 기호로 부르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나이와 성별만으로 누군가를
‘사장님’, ‘사모님’이라 부르는 게 당연해졌을까.
그리고 정작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왜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아저씨’라고 불리고 싶지 않은 걸까?
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종업원의 말대로 15분쯤 지난 듯했다.
사장은 아니지만, 이 테이블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서
국자를 들어 각자의 그릇에 찌개를 덜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건너편 후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 오늘의 주방장은 사모님이시니까.”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사장도, 사모도 아닌
그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서.
식당을 나서며 계산대 앞에 섰을 때,
예상대로 들려왔다.
“사장님, 결제 도와드릴게요.”
나는 또다시 잠시 멈칫했다.
이 애매함은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답은 없다. 다만 질문만이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지막 예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