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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절정

지는 걸까? 익어가는 걸까?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해바라기가 졌네요."


어느 관광지 입구에서 한 남자가 말했다. 갈색으로 바랜 꽃잎, 고개를 푹 숙인 커다란 꽃송이. 확실히 며칠 전 SNS에서 본 노란 빛깔로 활짝 핀 해바라기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때 옆에 있던 유적지 해설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지금 익어가는 중이에요."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해설사님은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가리키며 천천히 설명했다. 저 안에서 씨앗이 몽글몽글 여물고 있으며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겼던 ‘노란 절정’은 사실 짧은 순간일 뿐이라고. 해바라기에게 진짜 중요한 시간은 지금처럼 조용히 씨앗을 채우는 시간이라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우리는 왜 화려하게 피어난 순간만을 ‘절정’이라 부르는 걸까? 노란 꽃잎이 사라지면 끝이라 단정하고, 고개 숙인 시간은 쇠락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해바라기에게 진짜 절정은 어쩌면 이 여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시선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충만한 순간 말이다.


문득 오래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요즘 좀 조용하더라?"

나는 단지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그 침잠의 시간을 친구는 위축이나 무기력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잠시 설명할까 고민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무엇이 익어가는 중인지, 어떤 씨앗을 키우는지…

그건 말로 쉽게 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타인의 절정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에게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가장 생생한 순간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혼자 걷는 밤길이 가장 충만한 순간일지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만의 내밀한 성장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려는 순간, 아주 잠시 멈추는 연습을 한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성급하게 "괜찮아?"라고 묻기보다 그저 곁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다가가 본다. 누군가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조언보다 관찰을 먼저 해 본다. 사람마다 꽃이 피는 속도도, 씨앗이 여무는 시간도 다르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딘가의 들판에서도 지금, 해바라기들은 고개를 조용히 숙인 채 씨앗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시든 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해바라기는 지금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묵묵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고개 숙인 해바라기 앞에서,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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