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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내를 선택할 겁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요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솔로였을 때 ‘배우자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질 만큼 조금 엉뚱한 리스트였죠.

경제력, 성격, 학력, 종교, 집안 분위기, 함께 살아갈 라이프스타일…
그 모든 걸 다 적어두었지만,

정작 '사랑'이라는 단어는 적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너무 당연한 거라서 뺐던 걸까요?
아니면 사랑은 언젠가는 휘발되는 감정이라 믿어
처음부터 제외해 버린 걸까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리스트엔 확실히 ‘사랑’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다시 배우자를 선택하라면 어떤 기준을 적을까?”
예전처럼 머리로만 계산해 가며 체크리스트를 만들까?
아니면 마음 한쪽에서 불쑥, 어떤 한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를까?

하지만 제가 붙잡게 되는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일까?’


사랑이라는 건 참 묘해서,
좋을 때는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데
힘든 순간은 누구보다도 깊게 상처를 남기더군요.

그래서인지 요즘의 저는 묻습니다.

“내가 이 사람의 기쁨뿐 아니라,
이 사람의 단점과 어두움까지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기준은 예전의 ‘스펙 리스트’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동시에 훨씬 더 사랑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1년에 딱 한 번만 보면 좋을 사람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내’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동영상에 나온 답변자의 대답은 '장모'였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왜 1년에 한 번이라고 했을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말속에는 꽤 많은 속내가 숨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붙어 있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숨이 막힐 때가 있고,
말 한마디가 칼처럼 꽂힐 때도 있고,
생활의 무게가 서로에게 번질 때도 있습니다.


사랑은 매일 보아도 좋은 감정이지만,
현실은 매일 보기 때문에 더 부딪히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니 ‘1년에 한 번만’이라는 말은
사랑이 식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고백 같았습니다.


예전 직장에서는 승진을 하면 무조건 지방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가야 했죠.
보통이라면 힘든 일인데,
어쩐지 주위 아저씨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생에 어떤 공덕을 쌓았길래
집에서 벗어나 혼자 살 기회를 얻냐고.”

농담처럼, 하지만 농담 같지 않게 아저씨들은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씁쓸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어쩌다 ‘혼자 사는 시간’이 휴가처럼 느껴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주말부부가 된 사람들이
오히려 “관계가 더 좋아졌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로 너무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가까이 있을수록 더 힘들어지고,
멀어졌을 때 비로소 다시 따뜻해지는 이유.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가까움은 애틋함을 잊게 만들고,
거리는 사랑을 다시 깨우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저에게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제는 리스트 같은 건 만들지 않을 겁니다.
사랑이 있는지를 따로 분류할 필요도 없고,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내 삶에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이런 걸 계산하지도 않을 겁니다. 물론 계산도 잘 되지 않겠지만요.


그저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어떠한 순간에도 끝까지 함께 버틸 마음이 생길까?”


사랑은 화려한 순간보다,
두 사람이 함께 견딘 날들이 더 두텁게 쌓여가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제가 어떤 리스트를 만들었든
어떤 기준을 세웠든
다시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내를 선택할 겁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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