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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왜 일을 멈추지 않는가?

일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지난주 저녁, 아는 사람 중 가장 여유 있는 축에 속하는 한 법인 대표와 식사를 했다. 평생 쓰고도 남을 수 천억을 이미 벌었고, 자녀들도 다 성장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와 상황이었다.


"요즘도 바쁘세요?"


가벼운 안부 인사를 건넸는데,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허허, 어제도 밤 9시 반까지 일했네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저 정도 돈이면 나는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 텐데.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살 텐데.' 사실 그의 대답이 조금은 부럽기도,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했고,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야근을 자처했다.


"왜 그렇게까지 일하세요? 이제 좀 쉬셔도 되잖아요. 진짜 이유가 뭐예요?"


그는 물 잔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하는 일의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에요. 1년, 2년 후에나 완성될 프로젝트도 있고요. 때론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투자 결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적당한 스트레스가 저를 살아있게 만들어요. 숨 쉬는 느낌이랄까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최근 본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은퇴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평생 바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오히려 삶의 생명력이 꺾인다는 연구 결과였다.


"제 지인 중에 60세에 칼같이 은퇴한 분들이 있어요. 한 분은 은퇴하자마자 헬스장을 끊고, 건강검진을 받고, 건강관리에 올인했죠. 그런데 2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또 다른 한 분은 이유 없이 치매에 걸리시더라고요. 반면 70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뛰는 분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더라고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위협이 오히려 생존을 강화한다는 것. 동물도 천적이 사라지면 퇴화하듯, 사람도 도전이 사라지면 쇠퇴한다는 서늘한 진실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내가 돈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생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돈이 많으면 일을 안 한다'는 명제는 사실 경제적인 자유를 누릴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의 달콤한 상상에 가까웠다. 정작 돈을 가진 사람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일했다. 그의 눈빛에서 돈을 초월한, 일 자체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세무 관련 일을 하며 여러 자산가를 만났지만, 그들 중 '이제 충분히 벌었으니 놀겠다'며 손을 놓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 큰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더 긴 호흡으로 미래를 설계했다. 그 대가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야근을 하며 투덜댔다. "하아, 이렇게 일해서 뭐가 남나." 하지만 그날 저녁 이후,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일한다는 것,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 없는 삶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일까? 위협 없는 평온함이 정말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천국일까? 부자는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았다. 그는 일 자체가 주는 긴장감, 완성을 향한 고군분투의 과정, 그 속에서 느끼는 생동감 때문에 일했다.


우리는 언제쯤 '돈이 많으면 쉬고 싶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통장 잔고가 아닌, 매일 마주하는 치열함과 열정임을 발견하게 될까.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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