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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전환을 위한 몇 가지 질문들

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by 삼봄

오늘 밑미에서 나에게 필요한 변화를 찾는 15가지 질문의 리추얼 메이커 역할을 맡으신 송연님이 질문 하나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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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_밑미 리추얼 메이커 송연


작년에 나인팀 멤버들과 함께 공저하고, 올해 초에 출간된 <내일 전환> 출간기념회 날에 저는 ‘공간 전환‘을 주제로 짧은 강연을 했습니다. 공저한 책이다 보니, 9명이 돌아가며 발표를 했지요. 1명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니, 준비했던 내용을 충분하게 풀어놓지 못했던 아쉬움이 기억납니다. '다시 한번 ‘공간 전환‘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해 볼까?'하는 마음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물론 귀찮아서 곧 그 마음은 사라졌어요 ^_^, 누가 특강해 달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다시 강의할 일이 크지 않은 주제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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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는 주제는 그래도 제게 꽤나 익숙한 사유의 주제입니다. 질문디자인연구소장으로 열심히 활동할 시절에 ‘더 좋은 질문을 디자인하기’라는 1Day 워크숍을 많이 진행했지요. 더 좋은 질문을 하고 싶어 공부를 하시는 분들에게, 단지 질문만 바꿀 것이 아니라, 시간/공간/인간 사이의 연결에 변화를 주어야 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습니다. 최근 다시 쓰기로 한 이 질문 노트도 말하자면 질문하는 행위를 더 고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공간'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아직 '내 집, 내 사무실, 내가 사는 외부 세계, 그리고 내 내면의 광활한 공간'을…. 우리는 아직도 이미 주어진 충분히 공간을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대구라는 낯선 지역에 내려와 새로운 집, 새로운 사무실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아직 낯설긴 하지만, 이 공간이 제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이 공간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공간 인간>이라는 책을 펴내신 유현준 건축가님은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는 멋진 말을 남겨주셨지요. 강연 영상이 있어 덧붙여둡니다.


https://youtu.be/ixpI4vFfiOM?si=5nlGDGamYVLzJ-E5



“인간은 공간을 이용하면서 진화해 왔다.

한자로 인간은 ‘人(사람 인)’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공간은 ‘空(빌 공)’에 ‘間(사이 간)’을 사용한다. 두 단어 모두 ‘間’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다른 단어가 절반이나 같은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자의 구성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찾고, 공간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인간’과 ‘공간’ 두 단어의 구성이 비슷하듯 ‘인간’과 ‘공간’은 서로 협력하면서 진화해 왔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_ 유현준 <공간 인간>


아침에 질문 노트에 글쓰기를 하며, 공간의 가치를 더 하는 활동에 대해 사색해 보았습니다. 공간은 무언가 채워짐으로 인해 더 가치 있어질 수도 있지만, 대게 그 공간에서 무언가 새로운 연결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여유를 확보하는 행위 - 즉 비워냄으로 가치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그 비어있는 공간에서,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살아있는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가득 찬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방해합니다. 비움이라는 활동을 통해 죽어가고 있는 공간을 되살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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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집에는 현재 죽어있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창고처럼 쓰고 있는 뒷베란다에는 이사 후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물건을 꺼낼 수도 없는 상태로 쌓여있으니, 그냥 죽은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책장에는 주제별, 기능별로 분류되어야 할 책들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어진 책들로 가득합니다.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사무실 책장도 정리가 안 되어 있지요. 책장의 기능은 단순 보관이 아니라, 필요할 때 책을 쉽게 찾아보는 분류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혼자 살다 보니(핑계지요^^) 싱크대 공간도 며칠째 먹고 마신 흔적들 - 쌓여가는 설거지 꺼리가 방치된 상태로 있습니다.

제가 만든 여러 공간에서, 방문객으로 찾아온 멋진 벗들이 잠시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러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러려면 저 죽어가는 공간들부터 좀 비워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제 내면 공간을 시끄럽게 하는 이 강박적 생각조차도 비워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더 좋겠지요?

예전에 공간 전환을 위해 끄적여 둔 몇 가지 질문 메모들을 찾아내 옮겨둡니다.



||| 공간 전환을 위한 몇 가지 질문들 |||


당신은 지금 어디(어떤 공간)에 머무르고 있나요?

앞으로 나는 어디로 가고자 하나요? (그 공간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나요?)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는 무엇이 없나요? (채워놓고 싶은 게 있나요?)

당신이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단 하나의 물건을 더 넣을 수 있다면, 무엇을 넣고 싶나요?

지금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비워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공간은 당신을 온전히 깨어있게 하나요? 활력 넘치게 하나요? 아니면 당신의 의식을 잠들게 만드나요? 당신의 기분을 쳐지게 만드나요?

당신의 특별한 공간을 누구와 나누고 싶나요? 당신의 공간으로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만약 당신이 지치고 소진되어 있다면...) 당신에게 회복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공간이 있나요? 없다면 어떤 공간이 당신에게 필요한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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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의미의 공간 이야기 이긴 하지만.... 침묵의 공간에 관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이야기로 오늘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로서 저는 혼자 있을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보통 사생활의 희생을 의미하지요. 우린 혼자서 기도하고 관상할 자기 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저는 하루 동안 혼자 있을 기회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전 책을 좋아하는데 보통은 너무 바빠서 실컷 읽지 못하니까요. 제가 발견한 책은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의 글 모음집이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제가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사셨던 성 카타리나 께서는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기도하고 침묵하려 할 때 저와 똑같은 곤란을 겪으셨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의 <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쓰셨지요. 그 안에서 기도하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 말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동굴 속의 은수자(hermits)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충고대로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인생의 그 모든 의무들 중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하는 걸 배울 필요가 있고, 시끌벅적한 집 안이나 도시의 한가운데에서도 침묵의 공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시절에, 저는 그곳 사람들이 침묵의 공간에 대한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우린 보통 함께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거친 남자들이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지요. 그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어렵고 거친 삶을 살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일단 어떤 침묵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평화로운 상태로 빠져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_ 카테리 수녀 <A Simple Path 마더 테레사의 단순한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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