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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B Sep 13. 2024

08_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당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소서.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길지 않은 인생사, 굽이굽이 마다 마주해야 했던 시련들을 넘겨오며 가장 증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다. 과연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왜 이런 시련으로 날 시험에 빠뜨려야 했는가 묻고 싶었다.


당신은 정말 그곳에 계신지요.



염세주의에 물든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정했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부정하는 것 만같아 그런 혹독한 세상을 부정한다거나 애써 외면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염세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화목해 보이는 가정들 그리고 본인들의 사랑을 올림픽 메달만큼이나 자랑스러운 듯 만인에게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닭살스런 연인들. 나는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해있지 못한 이른바 '깍두기' 같은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어떠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유대감이라거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지나치게 불신해 왔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에워쌓여 있으며 항상 밝고 유쾌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어떠한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이질적인 나의 모습은 쓸쓸한 소외심리를 가리기 위한, 생존을 위한 장막 작전이었는지 모르겠다. 


글세, 나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밝은 척을 한다거나 사람들을 내 주위에 붙잡아 가두어 놓겠다고 의도적으로 하는 짓은 아니니 장막작전이라는 말은 어쩌면 과한 표현이 될 수 있겠고 그저 동물적인 생존본능이라고 칭하면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쓸쓸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삶을 살면서도 늘 나는 고독했고 사람들에 에워쌓여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이면 뒤에는 늘 그림자가 함께했다. 항상 알 수 없는 갈증과 헛헛함에 심장을 움켜쥐어야 했고 목덜미를 할퀴는 칼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나 겨울이 오면 가을을 탄다는 핑계로 자발적인 우울감에 빠져나와 너무나도 친숙해져 있는 슬픔을 자처해서 느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축축하고 차가우며 곰팡내 가득한 어린 시절에 느낀 오한이 아직도 나의 육신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한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이유에선지 여전히 추운 계절이 유난히 친숙하게만 느껴지고 누군가 나의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본다면 주저하지도 않은 채 '겨울'이라고 대답을 하곤 한다.



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그 신이라는 존재가 교회나 성당에서 찾아대는 하나님어도 좋았고, 불교에서 스승으로 섬기며 따르는 부처님이어도 괜찮았으며 무슬림의 알라신, 힌두교의 시바신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나를 세상에 존재케 한 신이 있다면 그를 찾아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기에,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시련들을 겪어야 하며 당신들이 만든 세상 속에서 왜 나에게 이러한 일련의 시험을 치르게 하너지 물어봐야 했었다.


원체 가족이라는 존재들에게, 특히 부모라는 자들에게 의지하며 나의 속내를 털어놓고 인생의 자문을 구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한 때에는 종교를 가지려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원래가 한 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이른바 '콩가루' 같은 집안인지라 교회에 빠져사는 사람들, 스스로를 부처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광적인 불자들로 크고 작은 소동을 지켜보며 자라온 나는 그저 종교라면 학을 떼고 이내 종교를 갖는 것조차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자, 빠른 시일 내에 인생을 정리하자 굳게 마음먹고 계획을 세워야 했던 이십 대, 그 이십대라는 나이가 주는 에너지는 과연 무엇인지 내일 아침 죽더라도 오늘 밤만큼은 덜 불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 오후는 과연 어떨지 점을 쳐보기 위해 무속인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고 타로장이를 찾아가 타로점을 보기도 했었다.


내가 모시는 신이 없기에, 나의 우주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없기에 당신들이 사는 세상의 신에게 나의 오후와 나의 내일을 물어라도 봐야겠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테다.




편안하게 앉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묘한 매력에 빠져 흔히 말하는 '무당집'에 무시로 드나든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접집에 갖다 바치는 '복채'를 마련하기 위해 평일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 따로 알바를 했던 적이 있으니 나도 '무속신앙'이라는 종교에 '십일조'를 하던 광신교도적인 삶을 살았던 때가 있긴 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마저도 거부하고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며 나의 우주에는 신도 법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는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일종의 안식처라 생각을 했기에 전국의 유명하다는 무당집에는 다 다녀본 것 같다.


신이 나 귀신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부정을 지독하게도 하면서도 그 존재들의 실존여부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2013년 5월,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날 대구 모처에 소문난 무당집에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 해도 유난히 시렸고 힘들었다. 고향에서부터 수 백 킬로 떨어진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집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과 잡음이 나를 괴롭혔고 자다 말고 일어나 전화로 욕을 얻어먹어야 했던 때였으니 물론 힘들었을 테다.


아무튼 그렇게 터덜거리며 무당집으로 들어가 언제나처럼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 넋을 놓고 앉아 '무엇이 궁금해 왔냐는' 무당의 질문에 '그냥 내 인생이 궁금해요.'라고 앙칼지게 대답을 했다.


피식하던 무당은 앞에 놓인 조반상에 쌀 반죽을 휙 던지더니 이내 방울을 흔들며 몸을 살짝씩 떨기히작했다.

그러던 그녀는 "복도 지지리도 없지, 조상 복도 없는데 부모형제 복도 없구나, 청천에 떠서 울고 가는 외기러기가 왔구나"라는 말을 쏟아낸다.


그러면서 가정의 화목함과 그 균형을 깨는 영가가 달라붙어있고, 나와 형제들을 시기질투하는 존재도 있으며 잘못 건드려 부정을 탄 악한 기운에 약간의 신도 올라타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이 정도라면 당장 오늘 밤에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지금껏 힘들게 살아온 것도 모자라 귀신의 장난질에 까지 놀아난다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보다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굳이나 자세히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가정 속에서 화목함과 균형을 깨는 영가라 함은 엄마라는 존재가 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집에 막냇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떼어낸 두 명의 아기들, 쉽게 말해 낙태령이라고 했고 제대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이름도 촌수도 알 수 없는 집안의 어른이라는 존재 또한 날 괴롭힌다고 했으며,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가 젊은 시절 술을 먹고 동네에 있는 성황당을 건드려 화를 입은 전적이 있는데 그때 그 귀신 또한 내게 붙어 나를 괴롭힌다고 한다.


또 어깨에 내려앉아있는 신은 얼굴도 보지 못했던 친할머니가 살아생전 부엌에서 항아리에 물을 떠놓고 빌고, 산에 큰 바위에 금줄을 걸어놓고 빌던 어떠한 신이 어깨에 내려앉아 있더라고 한다. 


이 무당집에 다녀온 후 고향집엘 가 엄마라는 존재에게 물어보니 모두 실재하는 사건들이었고, 그날부터 나는 우리 집안과 부모라는 사람들을 더욱 원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사는 것인가.


죽어버린 조상들이 날 굽어살펴 주는 것도 아니고, 나와 연관도 없는 인물들과 영적 존재들이 날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어리석은 부모의 행동들 때문에 고스란히 내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말 내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종류의 삶이며 과연 어떻게 살길 바라는 신의 계획인가.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 무당은 수백만 원이 넘는 굿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다만, 편안하게 살고 싶으면 이다음에 다시 와 부적이나 써가고 던 지 행복하고 싶고 그러한 인생을 원한다면 각오하고 굿을 하라고 집어던지듯 이야기를 했다.


이미 반쯤 주저앉아버린 삶이고 오래 사는 것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안녕히 계시라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 술을 엄청나게 퍼마셨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내 세상에 그리고 나의 우주에는 여전히 신은 없다.

다만, 나와 연관 없는 귀신들만이 존재하고 시시때때로 날 괴롭히거나 곤경에 빠지게 한다.


내가 좀 더 강하지고, 굳세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날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유희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 나의 인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 눈으로 귀신을 본다거나 남들이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거나 보고 선몽을 꾸고 접신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무당이 돼야 하는 팔자는 아닌 것 같다.


그저 박복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 굽이마다 주저앉아야 하는 상황들의 연속이라면 필히 귀신의 장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쪽이 나의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귀신의 장난이라 치부해 버리는 쪽이 어쨌거나 더 마음 편한 것 같다.


나의 세상에는 신은 없다. 다만 귀신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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