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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수미 Oct 26. 2024

웃음

오래된 나무문을 여는 것 같은, '끼끼기긱...' 소리가 귀에서 난다. 잠에서 깨자마자, 또는 생각 날 때마다 안구를 천천히 위아래로 굴리면서 얼굴 근육을 할 때면 마비된 오른쪽 얼굴, 귓가 안에서 나는 소리다. 잘은 모르지만 피부 아래 근육들이 굉장히 힘들게 힘들게 움직이고 있구나, 가 소리때문에 더 실감난다. 눈운동 덕분인지 말할 때 눈가 근육들이 과도하게 움직이는 증상이 훨씬 덜해졌다. 


요즘 눈운동과 함께 열심히 하는 건 웃는 연습이다. 볼근육에 힘이 없으니까, '오' '우' 처럼 입술이 잘 모아지지도 않지만 웃을 때에 오른쪽 입꼬리가 광대 쪽으로 시원하게 올라가지도 못한다. 활짝 웃는 모습이 예전처럼 좌우 대칭이었으면 좋겠어서, 입꼬리를 한껏 위로 올려본다. 이때도 역시 귀 안쪽에서 소리가 난다. 윗입술과 귀 아래, 관자놀이 근육들이 스트레칭하듯이 뻐근하게 당겨 올라가는 것도 느껴진다. 억지웃음을 몇 초간 지속하고 있으면 버틸 힘이 없어서인지 눈밑 근육이 달달달 떨린다. 회사 책상에서 기사를 쓰면서도 수시로 이렇게 억지 웃음을 짓고 있다. 누가 보면 굉장히 흉측한 모습이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무표정으로 있어도 이상할 얼굴.


걱정 속에 시작했던 미국 대선 특집 유튜브 방송이 종영했다. 대선 당일 방송 준비때문에 미리 사전제작 등도 해야 하니 부서 인력이 부족해서 예정보다 일찍 마쳤다. 전국 지지율 평균과 별개로 9월 말부터 트럼프 기세가 심상치 않더니 판도가 역시 트럼프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여론조사 세부 항목들을 살펴보면 거의 일관된다. 민주주의-인권-도덕성 측면에서는 해리스 월등하지만 경제(일자리)-물가-불법 이민자 정책에서는 트럼프가 더 잘 할 것 같다. 나는 트럼프 싫지만 남들은 트럼프 뽑을 것 같다. 미국인들의 지금 마음은 우리나라 2012년 박근혜-문재인 대선 분위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재인 도덕적이고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과연 경제 정책 잘 펼수 있을까? 미덥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 분위기. 그렇다고 박근혜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지만, 취재차 두 캠프 사무실을 하루에 돌고왔던 날 '박근혜가 되겠는데' 싶었었다. 문 캠프에는 온갖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문구가 다양하게 적혀있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건지 애매하게만 느껴졌는데 박 캠프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나뽑으면 여러분 잘먹고 잘살게 될거야.' 


해리스가 믿음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부통령직 수행하면서 존재감이 너무 없었다 등-헤픈 웃음도 확실히 한 몫 하는 것 같다. 어제 CNN 타운홀 인터뷰 보면서 '하나도 안 웃긴데 왜 혼자 미리 웃음부터 섞으면서 말을 하는거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유색인종-여성으로 자라면서 생긴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일까? 워낙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누구를 만나든 최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내고자 미리 유화적인 제스쳐부터 취하는 습관? 메릴 스트립이 주연했던 마거릿 대처 전기영화에도 이웃집 아주머니같던 대처가 말투·억양·행동 습관부터 교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음 대선에서라도 해리스가 또 출마하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이건 사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어색한 자리에서 미리 웃기부터 하는 습관, 일단 저자세로 나가는 습관, 고쳐야지. '잘' 웃기 위해 표정 연습만 할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잘 가려야겠다고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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