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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Nov 08. 2017

69. 모르는 사람은 원래 조심하는데..

아주 오래전, 여유 자금이 조금 있다 하니 부동산하는 고향 지인이 상가 투자를 권했다. 서울서 멀지 않은 지반, 인구가 늘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가 배후에 있다. 청약률이 높았다. 자금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임대는 다 됐고, 3년 임대 보장이다. 임대 보증금, 대출은 승계하면 된다 했다.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봤다. 손님이 몇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망설였다. 법조계 고향 선배님도 하나 산다고 했다. 쌩판 남도 아니고 아는 분 믿자, 계약했다. 


그런데 긴급 체포, 구속.. 사기 분양이었다. 피해자들이 비대위 꾸려 가까스로 준공허가가 났다. 이제 됐나 했는데 임차인이 문제였다. 그도 사기 임차 피해자다. 보증금은 내가 돌려줘야 한다. 더 큰 피해자인 내가 배 째라 하면 낭패라 생각했겠지. 일단, 월세를 한 번도 안 냈다. 못 받을 것 같은 보증금에서 까라는 거다. 그걸로 대출이자 내려던 계획은 틀어졌다. 나갈 때도 온갖 걸로 물고 늘어졌다. 베테랑 임차인한테 월급쟁이 초보 임대인은 상대가 안됐다. 일반적인 갑을관계는 없었다. 상황이 결정했다. 현실은 실전을 많이 해본 사람이 지배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다. 




지금은 세 번째 임차인이 사업하고 있다. 벌써 십 년. 매년 하던 걸 이제 2년 단위로 계약한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월세 꼬박꼬박 입금하고 전화 온다. 그러다 너무 힘들다고 재작년엔 아예 접었다. 한두해 한 것도 아니고 막상 그만두니 허전했을 거다. 나도 아쉬웠다. 한 달 뒤, 다른 아이템 있는데 보증금 좀 내려주십사 했다, 인테리어 할 돈이 부족하다고. 암말 않고 뚝 잘랐다. 월세도 내렸다. 


이번에 만료됐는데 시간 없다 자동연장 아니냐 하길래, 일은 일이니 계약서 다시 쓰자 했다. 월세 올려 받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혈관종으로 아랫입술이 늘 부어있다. 월급 올려줘도 직원 구하기 어려워, 가게 하나는 접었다 한다. 양키캔틀 사업은 그럭저럭 자리 잡았다고 선물로 하나 가져왔다. 온라인은 카페24 쓰고 있다.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아들이 벌써 5살이라고. 딸 하나 더 낳으라 했다. 이제 베테랑인데 엄살 그만 하고, 어서 성공해서 나한테도 좀 더 달라했다. 상권 형성도 안되고 임대료도 낮지만 이 사람 덕에 맘고생이 덜하다. 투자금도 어느 정도 회수했다. 고맙다. 앞으로 오래오래 사업 잘하길 진심 바란다. 상생하자고.

많이 실수했다. 배운 것도 많다. 어쨌든 사람이다. 투자든 사업이든, 사람이 죽이고 사람이 살린다. 모르는 사람은 늘 조심한다. 가만 보면 좀 아는 사람한테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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