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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의 글을 믿기로 했다

작가이자 독서논술강사인 중등맘이 쓰는 독서육아에세이

by Leeyoungjoo

유난히 찰랑찰랑한 머리카락, 하얀 얼굴. 나를 닮아 갸름한 턱 선과 야무지게 다물린 입술. 아몬드처럼 길고 깊은 눈동자까지.


어디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몇 시간 째 딸의 초등학생시절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사과머리를 한 딸이 붕어빵이 든 흰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달리는 동영상을 재생했을 때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동영상 속에서 초1이었던 딸은 봉투를 안고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식기 전에 얼른 가야 돼. 그래야지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먹을 수 있으니.” 앞니가 빠져 공기가 새어나가는 그 나이 특유의 발음이 나를 즉시 그 공간으로 데려다놓았다. ‘붕어빵이 식기 전에 집에 도착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과업인 것 같았던, 그날의 공기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직 바람이 찬 초봄,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이었다. 유치원에 함께 다니던 아이들과 나란히 입학한 초등학교이기에 아이도 나도 새로운 시작의 긴장감마저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때였다. 딸은 내 속을 썩이는 일이 도무지 하나도 없는 아이였다. 가르치기도 전에 한글을 썼고, 어디에 가더라도 친구를 곧잘 사귀었다. 늘 모범적이고 열심히 해내려는 아이라는 선생님들의 평가를 들었다. 진심으로 어떻게 이런 아이가 내 자식으로 왔을까를 고민할 정도로, 내 딸은 완벽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사진 속의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아침 등교를 하며 현관문에서 나를 향해 눈빛을 발사하는 아이를 보내고 들어서며 한 생각이었다. 이게 사춘기일까 아닐까가 고민이 되면 그건 사춘기가 아니라는 말도 듣긴 했지만 분명 딸은 변했다. 무엇보다 엄마를 보는 표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눈빛이 돌아버린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같은 아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뽀얗던 피부에 빼곡하게 ‘사춘기의 상징’ 여드름이 자리 잡은 것 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호르몬의 작용이겠지. 그런데 찰랑거렸던 생머리가 부스스한 곱슬머리가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아침마다 현관문을 나서는 딸의 부스스한 눈빛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중학생이 되니 정말 달라졌다는 걸 날마다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나는 ‘중2병도 중2에 오는 게 복이래.’라는 말을 품에 부적처럼 안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은 단순히 외모나 눈빛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동네엄마 몇몇과 함께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 엄마가 물었다.


“아, 딸 이번에 원서 냈어요?”


무슨 원서를 말하는 거지. 딸에게 들은 바가 없었다. 평소 딸이 알아서 일정을 챙기는 편이었고 내가 놓친 게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순간 식은땀이 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서요?”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커피를 호로록 넘기며 말했다.


“전교임원 선거요. 1학년은 부회장 출마할 수 있잖아요? 초등학교 때도 전교회장 했으니까, 원서 냈죠?”


식은땀이 났다.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내 손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딸이 임원선거를 놓칠 리가 없었다.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회장선거가 시작된 후 줄곧 임원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일을 즐기기도 했다. 나는 리더십이 딸의 강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탓이었다. 아무리 아이가 알아서 일정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중요한 일을 엄마가 짚어주지 못했다니. 강한 자책이 밀려왔다. 딸이 이걸 알면 얼마나 속상해할지, 혹시 지금이라도 지원을 할 수는 없는지, 온갖 생각의 가운데에서.


아이가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던 내가 물었다.


“너, 임원선거 출마 왜 안했어?”

“그냥 하기 싫어서.”


뭐든 알아서 하던 딸은 역시나 지원일정을 알고 있었다. 모르고 놓친 것이 아니었다. 알고도 하지 않은 쪽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전교회장을 한데다, 회장선거가 시작된 3학년 때부터 한 번도 임원자리를 놓치지 않은 딸이었다. 그만큼 딸에게는 리더십이 있었고, 그러한 자리를 즐기고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지원조차 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애가 도대체 왜 이러지, 지금 반항하는 건가. 중학생이라고 제대로 반항을 하기라도 해보겠다는 건가. 내가 계속 이유를 캐묻자 딸은 ‘그냥 안 될 거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어졌다. 슬펐다. 모든 일에는 일정한 불안이 따르는 법인데, 벌써 그런 압박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대신에 타협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건가. 무언가 더 조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딸의 눈빛을 보니 더 이상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 사건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이게 사춘기겠지’ 생각하며 변한 딸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채로 딸은 중2가 되었다.


딸의 머리가 곱슬머리로 변한 것은 별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이 생겼다. 2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 기간에, 딸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그만 자라고 말하려고 방에 들어섰다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딸은 생기부에 들어갈 독서록을 쓰고 있었다. 국어공부나 독서록 과제를 할 때면 왠지 딸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던 나는 딸에게 다가 섰고, 순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가까이에서 내려다 본 딸의 두피가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어디서 본 적도 없을 만큼 크게 자리 잡은 원형탈모를 보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딸의 스트레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변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알아야 했다. 나는 늦게까지 공부를 하라고 한 적도 없었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적에 압박을 준적도 없었다. “누가 너 시험 잘 보라고 했어?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나는 답답하다는 듯 물었고, 실제로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학원을 보내달라고 한 것도 딸 아이였고,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것을 택한 것도 분명 자신의 선택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친 김에 묵혀두었던 모든 것들을 나는 질문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회장선거도 그래. 내가 언제 너보고 회장하라고, 전교임원 하라고 한 적 있어? 난 네가 리더십이 강점이고 그런 걸 좋아하니까...”


딸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거 하면 엄마가 좋아했잖아.”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영어학원을, 고학년 때는 수학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사교육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4세고시니 7세고시니 하는 말에 비하면 사교육 열풍에 늦게 동참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나름의 기준도 있었다. ‘아이가 원할 때’가 그것이었다. 학원에 보내는 것은 아이가 보내달라고 했을 때였고, ‘애가 원해서.’, ‘요즘 애들은 학원 자기가 보내달라고 그래.’같은 말을 달고 살았다.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육아철학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내 반응 역시 아이에게 압박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어쩌면 학원을 재미있게 다니는 것도, 학원공부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딸이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그 옆에서 신나서 함께 바람을 잡으며 달려온 게 나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 잘 듣는 외동딸과 교육열 높은 전업엄마의 조합은 환상의 콤비’라는 말은 꼭 나와 딸을 위해 준비된 말처럼 들렸다. 내게 그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혹은 엄마로서 해내야만 하는 어떤 당위였다. 말 잘 듣는 외동딸은 준비되어있었고, 그 뒤의 말은 “너는 할 수 있다!”는 말과 완전 동의어처럼 보였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서포트를 해야 한다, 심지어 그걸 나의 ‘희생’이라고 믿고 있던 내게 이 상황은 몹시 충격이었다. 멍하게 있는 나에게, 딸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독서록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 이 책으로 독서록 쓰기 싫었어. 뭐라고 써야 될지 모르겠어.”


중학생이 되면서 생기부 독서록이 생겼다.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압박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읽을 만한’ 괜찮은 독서목록을 골라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딸도 내 도움을 필요로 할 거라고, 고마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쁜 일상에서 딸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분명 내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걸 엄마로서의 희생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어나 글쓰기 과제가 있을 때마다 내 조언을 구했던 딸이었기에, 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국어를 잘했으니까 국어를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국어는 내 방식이 옳다는 고집 또한 잘못된 고집이나 집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이 그제야 처음으로 밀려왔다.


이유는 있었다. 변명하자면, 학창시절 나는 국어를 유난히 잘했다. 국어만큼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늘 100점이었고, 언어영역이 특히 어려웠던 불 수능에서도 국어는 상위 1%였다. 그 해 유난히 어려웠던 국어 덕분에 대학진학에 성공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딸의 국어는 내 몫이라 믿었다. 자연히 내가 국어를 잘했던 이유에 천착했다.


내가 국어를 잘했던 건 독서 덕분이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쓴 독서에 대한 글에서, 그가 세계명작소설 뒤표지에 있는 세계명작시리즈의 도서를 연대기별로 정리해두고 모조리 읽는 취미를 가졌었다고 쓴 것을 보고 나는 격한 공감을 했다. 그 일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줄곧 가졌던 취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했다. 독서를 학원에서 배워야한다는 개념 자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인정하기가 싫었다. 한자어를 익히려면 한자를 가르치라는 말도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어휘는 그런 식으로 익히는 게 아니었다. 책을 통으로 재미있게 읽고, 그런 와중에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휘를 익히는 방식이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 다 하는 한자학습지도, 많이들 다니는 독서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나이에 앞선 책을 읽히고 싶었다. 영어책 독서레벨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영어독서학원은 보내면서도 한글독서학원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건 내 자존심의 문제였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골라주는 책은 대부분 딸의 현재 독서수준에 비해 과하게 높은 것들이었다. ‘원하는 것을 하게 한다’는 신념을 독서활동에서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쉬는 날이면 자주 서점에 데려갔고, 딸에게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딸이 가져오는 책은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주지 않거나 못마땅한 티를 내며 사주었다. 결국 정작 한글 책을 영어책보다도 신경써주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차라리 평범하게 학원에 보내고 평범한 독서 코스를 밟았다면 나았을 것이다. 아이의 국어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 성에 차지가 않는다’ 는 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조바심에 독서토론 학원에 처음으로 보냈을 때 입학 첫 주 만에 3%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상위권 반으로 이동한 딸을 보고도 나는 “네가 상위? 요즘 애들 문해력 진짜 심각한가보다.”고 폄하를 했으니까.


“네가 쓰고 싶은 걸로 알아서 써.”


딸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내 마음 속에 떠오른 단어는 어쩌면 체념이었다. 딸은 글을 완결성 있게 잘 쓰지 못하니까, 독서록을 쓰기에 알맞은 책을 고르지도 못할 테니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툰 글이라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 안 쓴다고 하는 게 어디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딸이 혼자서 독서록을 썼다. 읽어보지도 못하게 할까봐 속상했지만 딸은 글을 내게 가져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생각보다 너무 글을 잘 쓴 글이었다. 내가 그렇게 집착했던 기승전결도 훌륭했고, 나보다 독창적인 시각도 보였다. 어느새 딸은 또 이만큼 자라 있었다. 나는 어느 육아서에서 보았던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제는 내게도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아이가 고른 책은 내가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지만, 독서록만 읽어보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생생했고, 덕분에 나는 그 책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준 훌륭한 책이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아이의 글만큼은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이만 내려놓을 순간이었다. 책임감에서 해방되고 대신 가져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아이가 써내려갈 글과, 아이의 인생을 믿어야 한다는 결심이 그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글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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