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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5th

오렛만의 데이트

by Someone

2022년 가을무렵 큰 아이의 대학입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수능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큰 애가 지원한 전형은 이미 합/불합이 판가름나 있고 수능최저만 맞추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해 가을부터 한참을 큰 애와 데이트하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뷰가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 야경이 예쁘다는 핫플, 새로 생긴 근사한 호텔투어에서 부터 가깝게는 오사카, 오키나와, 멀리는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까지 여행을 다녔네요.


학기가 시작되고 학업에, 시험에, 친구들과의 만남, 여행, 과외 등등 큰 애가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데이트는 줄어들었고 서로 시간을 맞추려 해도 짬이 안나 포기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어제 큰 애한테서 카톡메세지가 와 있더군요


“엄마!!!! 저 내일 아무것도 없어요!!!“

“애기들이 놀러가나?”

“웅!!!! 과외애기들이 놀러간다고 해서 뺐어요”

“그때 말한 라자냐 먹으러 갈래?“

“좋아요! 오예!!!!”


라자냐를 좋아하는 큰애랑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트 꾹 눌러두었던 가게에요. 심지어 이곳의 라자냐는 20인분 한정메뉴라 오픈런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답니다.



비가 내려 산책은 못했지만 오랫만에 맛난 음식먹으며 수다를 떨었어요. 큰 애는 저를 닮은 구석이 참 많습니다. 책읽고 글쓰는 걸 좋아하고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근본없는 자의식과잉역시 판박이에요.


“유투버 같은거 해보지 그래? 영어로 한국 핫플 소개하면 좋을 것 같은데… 좋은데 많이 다니기도 하고 영어도 편하니까.. 모녀가 같이 하는 컨셉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

“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닌데요, 얼굴을 다 드러내고 불특정다수에게 알려지는게 불편해요“

“하긴, 엄마도 그래서 아이템이 있어도 시작못하겠더라, 가면쓰고 할까?“


“엄미, 얼굴은 우리 자산인데 그걸 가리고 하면 의미가 없지..“

“그건 그러네, 우린 못하겠다”


어찌보면 어이없는 이 대화의 흐름이 우리 모녀에게는 매우 익숙합니다. 자기애가 넘쳐흐르다못해 풍덩 빠질 지경인데다 둘이서 서로 부추기며 응원하거든요.

“엄마는, 니네가 이뻐서 진짜 좋아!!!! 너도 니네 엄마가 이쁘니까 좋지 않니?“


실없는 소리일지라도 이렇게 이쁘다 이쁘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몽글몽글 행복해져요.


뭐 그리 어렵고 힘든 말이라고,

당신 참 예쁘다

당신한테 고마워

이 말 한마디를 못했을까요.


그렇게 건네지 못한 말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껍데기같은 관계만 남게 되는 걸까요. 관계란, 오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섬세히게 들여다보고 살펴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오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지나쳐버리는게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때는 사랑이었던 감정이 메말라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단비에도 싹이 돋는 것은 말라버린 바닥때문일까요, 단비가 귀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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