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관계 그리고 영향
사무실 인근, 즐겨 가는 음식점이 있다. 분위기가 근사하거나 음식이 엄청 맛있다거나 한 곳은 아니지만 여러장점이 있어 몇차례 연거푸 방문했더니 매장 매니저님께서 우리를 기억한다. 그뒤로는 좀더 편해져서 자주 찾는다. 적당히 캐주얼하고 적당히 진중해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고 애착메뉴가 있으며 와인콜키지 부담이 없다.
스페인요리 전문점인데, 내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 가장 맛있게 즐겨 먹던 빠에야가 이곳에서 제일 맛없다는게 아쉽지만 빠에야를 안먹으면 되니까 그닥 단점이 되진 않는다. 첫 방문에서 부터 초반에는 피자니 세비체니 파스타니 빠에야니 골고루 주문해 보았지만 최애메뉴에 푹 빠진 뒤로는 메인메뉴도 아닌 버섯만 여러 개를 주문한다. 이젠 메인메뉴를 주문하지 않아도 버섯만으로도 메인메뉴이상의 주문을 한다는 걸 알아서 그냥 두신다. 저들은 왜저리 버섯을 좋아하는지 궁금해 하실런지는 모르겠다
둘째 아이 중학교 1학년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네 어머님들이 있다.같은 반 남녀회장을 하게 되면서, 진로위원회 봉사를 하면서 자주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그 둘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각자의
이유로 한 차례씩 이사를 했다.한 엄마가 마침 저 식당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물론 원래 동네에서 도보가능한 거리이지만 동네에서만 모이던 우리는 덕분에 영역을 확장했다.
이집 남편분이 같이들 드시라고 와인을 챙겨보내주셨다. 부부가 데이트도 자주 하고 우리들 술자리에 종종 나타나 계산하신 뒤 아내를 에스코트해 귀가하시곤 하던 분이다. 넷이 와인 두병은 조금 모자랐고 버섯안주로만은 부족했다. 멤버가 다르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버섯을 최고로 여겨 버섯 추가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파하고 각자의 집을 향하려는데 자녀가 이대, 홍대를 다니게 되어 상수동으로이사를 준비중인 엄마 하나가 주춤주춤거린다. 우리집은 버스류 두정거장쯤, 이 엄마 집은 서너장거장쯤 더 내려간다. 걷기엔 좀 그랬는지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데리러 올 수 있냐는 내용이다.
어… 그래봤자 저 앞인데, 집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네, 비효율적이다. 심지어 그 남편은 정신과 원장님이다. 지금이라면 하루일과에 지쳐 주무시고 계실텐데… 내가 상담다니는 원장님은 날이 점점 더워지는데.리모콘이 안보여 불안하다는 하소연을 이십분간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들어주신다. 내가 알기로 정신과 원장님은 극한 직업이다.
아! 아내가 자정넘어까지 귀가하지 않으면 보통의 남편들은 안자고 기다리나? 우린 알아서 들어가고 알아서 잘때되면 자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속으로만 의아해했다. 나는 가깝든 멀든 늦은 시각이든아니든 남편에게 나를 데리러 와달라거나 데려다 달라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나는 지나치게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에게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한때 나는 늘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당연했다. 그가 처음으로 나를 데리러 오지 않고 다시 잠이 든 날 우리의 인연은 엇갈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과음을 했을 수도 있고 몹시도 지친 하루였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마음의 문제라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그즈음 우리의 인연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삼십년전 나를 처음 만나 너무 좋아하게 되었지만 용기내지 못하고 각자의 연인을 두고 친구로 십년가까이 보냈을 즈음이다. 친구와 연인시이에서 보낸 몇년의 끝을 친구로 정리한 날이하필 그가 처음으로 나를 데리러 오지 않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와 함께 다시 잠이 들어버린 날이다.
그에게는 해달라고 바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대부분은 말하지 않아도 다 해주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는 같이 식사를 할 때면 먹기 좋게 생선을 발라 접시에 옮겨주고 고기를 구울 때면 기름부위를하나하나 잘라 예쁘게 올려준다. 혼자 가기 어려운 곳,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에게 부탁을 한다. 그는 내말을 들어준다.
내가 원래부터 독립적으로, 스스로 다 알아서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다. 그래야만 하는 삶을 남편과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십년간 버티며 지쳐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