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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Sep 13. 2022

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이 사는 법.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고 결혼 전에는 서점이나 북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이 삶의 낙인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취미는 여전하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아도 시집이나 소설 등 각종 멋진 문장에서 감동을 얻는 편이다. 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편지를 쓰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나는 그들에게 편지를 한 장씩 써서 선물해주곤 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해서 내가 찍은 풍경 사진을 인화해서 그 뒤에 편지를 빼곡히 적어서 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캘리그래피로 적고 뒷장에 편지를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니 누군가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할 때 그렇게 남자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지금의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에 나는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었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편지를 받아 볼 수가 없었다. 슬슬 짜증이 났던 나는 왜 편지를 주지 않느냐고 따졌던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의 대답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미안해.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편지를 스스로 써본 적이 없어. 내가 지금껏 쓴 편지라고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군인 아저씨들에게 쓰라고 해서 쓴 편지가 다야. 군대에 가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부끄러워서 쓰지 못했어.” 나는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지를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저 마음에 있는 말을 적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기에 남편에게 편지를 받아내기 위해서 많이 졸랐던 것 같다.


연애할 때는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혼을 하니 서로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취미에서도 드러났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글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서점에 갔던 적이 있었다.


“책을 사려고 온 게 아니야? 그런데 왜 구경만 하고 있는 거야?”책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책을 사려고 온 게 아니야. 서점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온 거지.”행복해하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은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연설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서점에 책을 사는 목적을 가지고 들르는 것이겠지만, 나는 달라. 서점에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힐링 그 자체인 걸.”

서로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결혼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이런 상황에 부딪혔다. 나는 결혼의 로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퇴근 후에 남편과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하루의 힘든 일을 나누고 대화를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자기야 나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든 일이 있었어.”

“뭔데?”

“내가 실수한 일이 아닌데, 부장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뭐라고 하는 거야. 진짜 기분 나빴어.”

“그럼 너도 한마디 하지 그랬어. 잘못하지도 않은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했어야지.”

“그렇긴 하지. 그건 맞는데....”


감정적인 위로를 바라는 나에게 남편은 늘 해답을 주었다. 해답이 듣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남편은 아주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성향이 너무 다르기에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참고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대화는 점차 줄어갔고,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대화를 하질 않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부부처럼 보였지만, 내 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나는 터져버렸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남편도 놀랐고, 나도 내가 서글퍼졌다. 그날 이후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하나, 퇴근하고 집에 오면 뜨겁게 포옹해줄 것.
둘, 함께 식사를 할 때는 핸드폰을 되도록 보지 않을 것.
셋, 눈을 맞추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물어봐 줄 것.
넷, 내 생각과 달라도 상대방을 존중해줄 것.

보기에 평화로운 부부가 아니라,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처음에는 하나도 지키기 어려웠다. 생활에 치여서 그리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꽤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서로를 위해서 노력을 하다 보니 우리는 차츰 변해 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부딪히고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겠지만, 서로가 다름을 존중하며 한 발자국씩 맞춰 나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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