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나의 어머니

by Keepbook


'아버지는 우리 눈앞에서 천천히 시들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거대한 베개 사이에 웅크리고, 회색 머리카락은 올올이 곧추선 채, 아버지는 어떤 복잡하고 개인적인 일에 열중하여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마치 아버지의 인격이 몇 개로 분열되어 서로 반박하고 말다툼하는 것 같았다.'


- <방문>, 브루노슐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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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는 천천히 거실 바닥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액체처럼 흘러내린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오후의 잔잔한 햇살이 거실 창문을 통과하여 집을 밝게 비추었으나, 그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어머니는 혼자 그렇게 녹아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한 번, 두 번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바닥이 되어 버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괜히 그 주변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발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부엌으로 가서 라면을 하나 끓였다. 냄비를 꺼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라면 봉지를 꺼내면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런 보통의 소리들이야말로 기운 없던 사람을 슬며시 일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라면 수프 냄새가 부엌과 거실을 가득 채울 때 즈음이면, 어머니는 바닥에서 빠져나와 스르륵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왔니?"


그것은 공기보다 힘없는 소리였다. 나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별다른 말 없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라면 먹을래?"


내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진한 검정색 머리카락이 어머니의 이마 앞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한쪽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년은 누워만 지냈던 사람처럼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다. 허리를 잔뜩 수그린 채 어머니는 하체만 겨우 움직였다. 상체는 아직도 바닥이 되려는 듯 바닥과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자세로 어머니는 어기적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냥 바닥이 되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나는 혼자 부엌에 남아 라면을 먹었다.


방에 들어갔던 어머니는 저녁이 되면 다시 누웠던 자리로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두툼한 공책에 가계부를 썼다. 왼쪽 다리는 반듯하게 접어서 무릎을 턱 밑까지 끌어왔고, 오른쪽 다리는 바닥에 힘없이 늘어뜨렸다. 때로는 그런 자세로 혼잣말을 오래 했다.


"아니, 왜 계산이 안 맞지?"


"하, 이번 달도 너무 많이 썼네. 쓸 것만 썼는데도."


어머니의 한숨 같은 말들이 들려오면 옆에 앉아있던 나야말로 바닥에 녹아내려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바닥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냥 어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끔 그런 어머니의 조그마한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다. 다 잘 될 거라고, 그런 말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였거나 반항하는 청소년이었으므로, 그런 토닥임은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가계부를 쓰던 어머니는 가끔씩은 혼자 대화하기도 했다. 그것은 혼잣말이라기보다 확실히 대화였다. 그럴 때면, 브루노 슐츠의 문장처럼 나 역시도 어머니의 인격이 몇 개로 분열되어 서로 말다툼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어쩔 수 없잖아. 당분간은 이렇게 해야 해."


"아니, 근데 이게 맞냐고."


나는 어머니의 이 같은 말다툼을 중재하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그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나에게 나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연예인보다 더 빛이 나는 사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꼭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그래서 어머니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과 일부러 스타일링한 것처럼 보이는 부스스한 머리카락, 하얗고 매끈거리는 피부는 나에겐 더욱 가질 수 없는 보석처럼 느껴졌다.


내 생각에 나의 어머니는 같은 시대 사람들 중에서 꽤나 미인에 속하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 시절에 쌍꺼풀이 짙은 커다란 눈은 많지 않았을 테니까. 오래 전의 어머니를 찍어둔 흑백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사진 속 어머니는 색깔이 없는 모습이었음에도 혼자 반짝거렸다. 그렇게 반짝이던 어머니였으나 어머니는 자꾸 뒤로 숨고, 낯을 가리고, 그래서 좁은 반경 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결혼 후 어머니는 자신의 좁은 삶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내 추측으로는, 예상하지 못 한 생활고에 매우 당황했던 것 같다. 삶이 이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어머니는 몸으로 배워나갔다. 아쉽게도 어머니의 그 배움은 어머니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모조리 퇴보시켰다. 어머니는 점점 시들어갔다. 삶에 치였고, 사람에 속았으며, 돈에 엮였다. 어머니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점차 시들어 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시들어가던 어머니는 아주 가끔씩만 활짝 웃었다. 나로서는 그 웃음을 다시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는데, 어떤 종류의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지를 또한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에 어머니가 아주 행복하게 웃었던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을 떠났을 때였고, 그래서 나는 또 여행을 가자고, 근처라도 떠나보자고, 그렇게 몇 번이나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엄청난 우울감에 휩싸여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 돈이야."


그리고는 다시 어머니의 그 자리에 누워 천천히 바닥이 되어 버렸다.



#

바닥이 되어 버린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집안의 분위기까지도 차가운 바닥처럼 만들어 버렸다.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또다시 거실 바닥이 되어 있는지 힐끗 살펴보고, 아무런 말없이 각자의 방에 들어가 방바닥이 되었다. 그 시간이 너무나 무섭게 조용해서 제발 누구라도 조그만 발소리라도 내주기를, 그래서 우리를 일으켜 주기를, 나는 그렇게 바랐다.


그래, 발소리면 충분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나의 아버지는 심하게 화를 내면서 집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바닥이 된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신이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내 동생을 많이 다그치고, 화를 내고, 노려보기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나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매서운 눈을 한 아버지가 서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결코 바닥이 되지 않고, 늘 꼿꼿이 서 있었다. 나는 왜 어머니가 바닥이 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문을 잠갔고, 오래 그 문을 열지 않았다.


아버지의 화가 우리가 아닌 어머니에게 향할 때면 나는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얼굴에 대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지금 아버지는 바닥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라고.

사람이 아니라 바닥이라고.

바닥에게 화를 내는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좀 그만하고, 아버지도 방에 들어가서 바닥이 되시든지 그게 싫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어머니와 우리를 돕는 것이라고.


그렇게 울부짖고 싶었다.


어머니는 오래 바닥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은 혼잣말을 했다. 혼자 말다툼도 했다. 어기적거리며 부엌에 가서 무언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바닥이 된 지 오래라서 입맛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래,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모두 바닥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독립을 했고, 결혼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어머니는 여전히 바닥처럼 살고 있지만 그래도 때로는 바깥을 나간다. 사람도 만나고, 공부도 한다. 최근에는 자격증 시험을 보겠다고 학원도 다닌다. 그래, 긴 시간 바닥으로 살았음에도 살아나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꼭 끌어안는다. 그동안 바닥으로 사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냐고, 그 차갑고 단단한 바닥에서 이제는 좀 빠져나와 하늘도 좀 보고, 계단도 좀 오르고, 풀도 좀 밟아보라고. 나는 말없이 그렇게 말할 뿐이다.


어머니가 바닥으로 산 시간만큼 나는 바닥이 되지 않기 위해 산다. 매일같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하고, 공부하고, 글을 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내가 나의 어머니처럼 바닥이 될까 봐 무서워서, 바닥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바닥이 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아니까, 그래서일 것이다. 이처럼 바쁘게 사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오히려 내 엄마 같구나."


어머니의 이 말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내려앉힌다. 그러나 나는 이 또한 이해한다. 어머니는 정말 바닥이 되었던 셈이고, 그것은 어머니 스스로도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 바닥이 되고 싶어서 바닥이 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머니는 나를 빤히 보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넌 정말 예쁘다. 나를 닮았어."


이 말은 내가 평생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의 보석, 나의 이상, 나의 아름다움인 어머니. 그토록 어머니를 닮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바닥의 시간들과 바닥이 되지 않으려는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 드디어 나는 어머니를 닮게 된 것이다. 내가 어머니고, 어머니가 나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무리 바닥이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바닥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날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다. 녹아내려 바닥이 되어도, 그 삶은 그대로도 충분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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