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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그림자를 다시 끌어올리는 사회에 대하여 ㅡ

이념의 굴레를 벗지 못한 우리 정치에 부쳐)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89


ㅡ 소년의 그림자를 다시 끌어올리는 사회에 대하여 ㅡ

(이념의 굴레를 벗지 못한 우리 정치에 부쳐)


"한 사람의 젊은 날 실수는 어디까지 따라붙어야 하는가?"


최근 조진웅 씨가 과거 소년범 경력 논란 끝에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 은퇴를 선언한 사건을 두고 정치권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처벌받은 일을 다시 들춰 과도한 책임을 요구한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범죄 카르텔”이라는 과격한 언어까지 등장했다. 사건 본질보다 이념 대립 구도로 흡수되는 모습이 반복되는 현실이 오히려 더 안타까울 뿐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송경용' 신부의 “그 시절을 들춰 오늘의 시점에서 판단한다면 많은 아이들은 숨도 쉴 수 없다”는 말과 '한인섭' 교수 “소년법은 처벌과 함께 교육과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라는 말을 인용하며, 조 씨가 청소년기에 처벌을 받았고, 이후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면 그 사실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송신부와 한교수 발언에는 과거의 과오를 짊어진 이에게도 다시 살아갈 여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반면 '국민의 힘' 등 야권에서는 다른 시각을 내놓는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받는다”는 논리와 함께, 조 씨에 대한 옹호는 특정 진영을 위한 편들기로 비친다는 비난도 이어진다.


국민의 힘 어떤 정치인은 ‘공직자 소년기 흉악범죄 공개법’과 같은 입법 추진까지 언급하며 논쟁을 더욱 정치화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실제로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의 본질 <청소년 범죄의 재평가 기준과 재사회화>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정치가 사회적 논쟁에 의견을 표하는 것이 그들 역할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 개인 삶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이념의 색깔로 나뉘어버리는 현실이다.


잘못의 크기, 처벌의 적정성, 반성과 변화의 가능성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지 ‘좌파냐 우파냐’의 잣대로 재단될 사안은 아니다.


나는 한때 교도관으로 근무했다.

그곳에는 악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도 있었지만, 한순간 판단 오류나 불운으로 철창 안에 들어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회는 그들의 실수를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실수를 ‘평생형’으로 만드는 것까지 사회가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소년의 일탈을 이유로 한 사람 전체 인생을 영구적으로 제한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소년원은 처벌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 불린다.

청소년을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교육·교정의 장이라는 의미다.


그곳을 거쳐 나온 사람이 반성과 노력으로 삶을 바로 세우고 사회적 성취까지 이루었다면, 그것은 비난의 근거가 아니라 재사회화 제도의 목적이 실현된 사례에 가깝다.


그러한 삶의 전환은 정치적 공방 재료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응원해야 할 가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 과거를 들춰낼 때마다 이념 필요에 맞춰 잣대를 늘였다 줄이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조진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인간보다 이념을 먼저 보는가, 아니면 이제라도 그 순서를 되돌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소년기의 그림자를 다시 끌어올려 오늘의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우리는 그 쉽고 편한 길 대신 더 성숙하고 더 어렵지만 더 인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딛고 살아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정치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대답해야 할 때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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