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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Mar 19. 2017

시칠리아에서 찾은 낯선 초콜릿의 매력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이탈리아 초콜릿 하면 십중팔구 금박 포장된 헤이즐럿 향 가득한 페레로로쉐나 중독성 있는 누텔라 잼을 떠올릴 테지만, 초콜릿의 조상님이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칠리아 동남쪽의 아름다운 바로크풍 도시에서 생산되는 모디카 초콜릿이 바로 그것이다.


모디카 초콜릿이 특별한 점은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과거 아즈텍의 전통방식 그대로 초콜릿을 만든다는 것이다. 모디카 초콜릿은 우리에게 익숙한 초콜릿과는 질감이 다르다. 하나 떼어 씹어보면 모래 알갱이를 씹는 듯한 식감이 느껴지다가 이내 입안에서 단맛이 퍼지며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입에서 살살 녹는 일반 초콜릿과는 다른 낯선 경험이다. 이유는 가공 방식에 있다.



뜨거운 상태의 카카오매스에 설탕을 녹여 배합하는 일반 초콜릿과 달리 모디카 초콜릿은 카카오매스와 설탕을 낮은 온도에서 혼합하는 냉가공 방식을 사용한다. 돌로 만든 절구의 일종인 메타테 Metate에 뜨거운 카카오매스와 설탕을 반죽하는데 이때 메타테의 낮은 표면 온도 탓에 설탕이 녹지 않고 입자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이러한 냉가공법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유럽에서 초콜릿을 만들던 표준 방식이었다. 산업화와 더불어 콘칭과 템퍼링 등 현대화된 초콜릿 가공 기술이 널리 쓰이게 되면서 냉가공방식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모디카도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초콜릿 장인들이 현대화된 방식으로 초콜릿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이르러 고집스럽게 전통방식으로 초콜릿을 만드는 장인은 불과 3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이 모디카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안티카 돌체리아 보나유토 Antica Dolceria Bonajuto의 계승자였다. 타협하지 않고 선조의 가르침에 따른 전통방식의 초콜릿 제조를 고수했다. 제조업자와 지방정부가 힘을 모아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구식의 초콜릿을 이탈리아가 자랑할만한 관광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대량 생산된 시중의 초콜릿과 비교할 수 없는 풍미를 가진 수제 초콜릿의 대명사로 모디카 초콜릿이 재조명된 것이다. 이제는 모디카 어디를 가도 전통방식으로 만든 다크 초콜릿에 고추, 레몬 기름, 바다 소금, 피스타치오 등 다양한 향미가 첨가된 독특한 풍미의 초콜릿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photo by www.bonajuto.it


 모디카 사람들은 음식에도 초콜릿을 활용한다. 시칠리아식 주먹밥인 아란치니의 속으로 초콜릿이 들어가는 정도는 애교다. 고기를 넣어 만든 파이에 초콜릿이 버무려져 있는가 하면 스테이크나 구운 생선에 초콜릿 소스를 곁들이는 요리도 있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초콜릿은 원래 쓴 맛이 나는 음식이다.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들어 먹은 건 유럽에 소개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달콤한 음료로 사랑받은 것과는 별개로 쓴 맛 그대료의 초콜릿은 고기 요리용 소스의 풍미를 높이는 데 사용되기도 했으며 카카오 가루를 샐러드에 뿌려 먹기도 했다. 요즘 슈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는 카카오 닙스의 활용 예가 바로 과거 유럽인들이 카카오를 다루던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전혀 기괴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모디카는 초콜릿도 유명하지만 인근의 라구자, 노토와 함께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들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곡선이 강조된 성당들이다. 바로크 건축 양식을 이끈 이탈리아의 양대 천재 중 한 명인 보로미니의 비정형주의 양식을 따른 이들 성당들은 장엄하면서 우아하고 마치 꿈틀 거리며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아삭 거리는 모디카 초콜릿 하나 베어 물고 느긋하게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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