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기억, 그곳은 어둡고 환한 곳이었다.
그곳은 어둡고 환한 곳이었다.
강남역에서 15분쯤 걸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강남역 인근 치고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2층에 있었다. 여러모로 발견하기 쉽지 않은 장소.
하얀바탕의 심플한 검은 폰트의 “덴마크 엘리펀트”라는 간판을 내건 그 카페는 영 눈에 띄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지금의 아내(당시엔 여자친구)와 나선을 절반만 올라가는 느낌의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들어가는 순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팻 메스니가 게펜으로 옮긴 후 녹음한 라이브 앨범인 <The road to you>가 흘러나왔다. 저 건너편에는 내 등짝보다도 훨씬 큰 앨범의 아트워크가 핀조명과 함께 걸려 있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테이블이 열개는 되어 보였다. 한 사람도 앉아 있지 않아서 더 넓어보였을 수도. 바에 홀로 앉아 있던 주인장은 범상하지 않은 포스를 풍겼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음악하는 사람이다 싶은 분위기. 40대 중반쯤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웨이브가 진 장발, 호리호리한 몸매에 다듬지 않은 수염을 길렀다. 인상은 강렬했지만 마치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아메리칸 인디언 족장 같은 느낌.
주문한 아메리카노에는 크레마가 잔뜩 떠 있었다. 팻 메스니 그룹의 연주는 절정에 치달았다. 원래 누구한테 막 살갑게 말거는 스타일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사장님한테 말을 붙였다.
“팻 메스니 좋아하시나봐요, 저 펫 메스니 앨범 중에 저 앨범 제일 좋아해요”
그 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방문했던 것 같다. 맥주나 간단한 주류도 취급했지만 우리는 크레마가 동동 뜬 아메리카노에 가끔 꾸덕한 치즈 케이크를 주문했다. 커피만 주문하면 예의 그 주인아저씨가 가끔 치즈 케이크는 내주기도 했다. 새로 산 CD를 틀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제임스 블런트의 데뷔 앨범을 아저씨와 앉아서 무척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손님이 없으면 가끔 주인 아저씨는 옆 테이블의 의자를 끌고와서 등받이를 앞으로 하고 앉았다. 등받이에 팔을 올리고 음악 이야기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저씨라기 보다는 큰 형님 뻘이 었지만 주인은 형님 쪽보다는 아저씨 쪽이니까.
당시 나와 아내는 처가의 결혼 반대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할 정도였다. 나 역시 아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기어이 만나서 꾸역꾸역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좋은 음악과 맛있는 커피, 무심한 듯 따뜻한 환대가 있던 덴마크 엘리펀트는 우리의 방주였다. 마치 우리 한 쌍만을 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곳은 어둡고 환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