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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Nov 25. 2020

私小한 우울에 대한 탐구

1. 나의 우울에 관한 짧지 않은 개요(2)

나의 우울의 시작은 어디일까? #.2


내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였고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 중 하나가 인지 능력이 저하다. 정말 현저하게 떨어졌다. 쉽게 설명하자면 랙이 걸린 PC 를 떠올리면 된다. 수 백 메가쯤되는 데이터를 피봇을 쓰거나 함수로 정렬하려고 하면 PC가 잠시 생각을 멈춘다. 멈춘다기 보다 어느 지점쯤 가서 더 이상 프로세스가 나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뇌도 같아 직장 상사의 지시나 회의 시간에 나온 말들, 검토해야 하는 데이터들이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 중에서 정체가 발생한다. 뇌의 인지 도로에 병목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인지 능력 저하와 맞물려 있겠지만 난독증이 생겼다. 많지는 않아도 일년에 스무권쯤은 읽었던 책을 도무지 읽지 못했다. 정제된 텍스트이자 정보인 책을 읽지 못하게 되니까 인지 능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더 떨어졌다. 나의 정보처리 능력은 점차 느려졌다. 


나는 종종 여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1.5만 단어로 이야기하는 남자라고 소개하곤 했다. 여자는 하루에 2~2.5만 단어 남자는 5천~1만 단어를 써서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나는 딴 놈들보다는 조금 더 사용한다는 너스레였다. 발병 이후  증세가 심해지면서 하루에 3천 단어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직접 헤아려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단어사용의 빈도며 횟수며 전부 떨어졌다. 


대화에 있어서는 꽤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대화에서 받아치는 능력이 바닥이 됐다. 언제나 사적이든 업무적이든 대화의 끝은 러브포티. 매치 게임으로 끝이 났다. 사적으로는 결국 화로 이어지고, 공적으로는 협상에서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언어적 순발력은 반등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무저갱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설단 현상도 점점 심해졌다. 말이 자꾸 혀끝에서만 맴맴 돌았다. 꽤 적확하고 정확한 단어를 골라내는 일에 장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세개의 컵중 하나에만 간식을 감춘 후 마구 섞은 후 매번 간식을 찾는 강아지 같은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내가 고른 컵에서 간식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간식이라는 단어를 맡는 후각 중추가 사라지거나 그쪽으로만 뇌수가 찬 듯한 느낌이었다. 대화에서의 활력과 역동을 완전히 상실했다. 종종 맥락에 맞지 않는 말를 툭 꺼내어 대화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고유 명사의 80퍼센트는 잊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우울은 맥락과 상관 없이 감정이 이미 엉망진창이고 사고 체계가 뒤엉켜 버리는 병이다. 여러 가지 증상들을 써봤다. 증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솔직히 나는 현재의 우울을 야기한 ‘어떤 콘텍스트’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다. 지금의 우울이 발동하게끔 내 속을 야금야금 잠식한 이 우울의 진화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무슨 이야기냐면 지금의 우울증을 일으킨 직접적인 상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상황적인 이유가 나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동일한 상황 같은 사람에게 노출되면서도 적적하게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신의 감정적이면서도 육체적인 건강을 잘 조절한다. 나는 지금 같은 스트레스에 무너져 있는데, 우울증을 발달시키는 좋은 무엇인가가 나의 뇌, 감정, 몸에 아로 새겨져 있었던 탓일 텐데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우울은 원인이 분명하면서도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잘 아시겠지만 아이러니는 난제다.


나는 이 사소(私小)한 우울에  써 나갈 터인데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최대한 솔직하고 성실하게 나의 우울을 들여다 볼 계획인데 나의 상태를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으로 복기해보려고 한다. 자가 치유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나를 좀 더 알게 되면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 적어도 관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마치 임사 상태에서 분리된 영혼이 자신의 주검을 내려다 보듯 나를 볼 수 있게 되면 병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 도움이 되겠지.


이런 발버둥이 우울을 가속하거나 점층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옳바른 선택이기를 빌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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