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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Sep 13. 2019

나도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

1.


우리 남편은 누가 봐도 옷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건 연애를 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그런 남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와이프니 신경을 써주려 노력했지만 남편은 옷에 돈 쓰는 걸 워낙 아까워하는 데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냥 나도 남편이 알아서 입으려니 하고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어머님은 아들이니 그러실 수가 없었나 보다.

 늘 집에 내려올 때마다 후줄근해 보이는 아들의 옷차림이 신경 쓰이셨는지 결국 아주버님을 동원하여 남편을 데리고 아웃렛 매장까지 가시기로 하셨다.


"아야 돈 아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대충 입고 다니면 회사 사람들이 욕한다. 신경 좀 쓰고 다녀라."


어머님은 분명 입으로는 남편에게 얘기하시는데 남편이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을 이미 아시기에 나의 옆구리를 찌르시면서 남편의 옷차림에 신경 좀 써주라고 하신다.


"저도 여러 번 시도했는데 고집이 세서 제 말은 안 들어요."


내 얘기에 어머님도 이미 남편의 고집을 알고 계신 터라 고개는 끄덕이시지만 그래도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시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나도 좋은 옷 한번 제대로

못 사 입었다.

우리 엄마도 나만 보면 옷이 낡았다고 옷 좀 잘 입고 다니라고 하시는데 역시 시어머니도 똑같은 어머니의 마음이신 것 같다.


나도 그런 말을 해주는 우리 엄마가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2.


결국 쇼핑을 싫어하는 남편을 끌고 어머님과 아주버님 그리고 나와 딸아이가 차로 30분이 걸리는 지역 아웃렛에 도착했다.


어머님과 아주버님은 남편을 데리고 매장마다 다니며 옷을 고르기에 바쁘시고 나는 딸아이가 혹시라도 민폐를 끼칠까 싶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놀아주기 바빴다.


약 40분 남짓한 시간만에 어머님과 아주버님의 안목을 더하고 아주버님의 카드가 시원하게 긁히며 남편의 위아래 옷들이 구매되었다.


나는 저번 달부터 고질병처럼 아프던 허리가 다시 욱신거리는지 아웃렛을 걸어 다니는 내내 허리를 손으로 두드려야만 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신 아주버님이 내게 묻는다.


"제수씨 허리 아파요?"


나는 그냥 말없이 미소만 짓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차 타고 오느라 오래 앉아있어서 그렇지. 오래 앉아있으면 원래 그렇다."


나의 통증의 원인을 어머니께서 대신 설명하신다.


'하하;; 어머니 아니에요. 저 요즘 허리가 안 좋아요.

아까 어머님 도와서 일하느라 더 아픈 걸 지도 몰라요.'


미처 말하지 못한 이 말을 되뇌며 내가 허리가 아프다는 걸 알면 당장 병원에 가보자고 닦달할 엄마가 나한테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3.


결국 아주버님이 한우까지 풀코스로 사주신 걸 얻어먹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잠이 쏟아지는걸 겨우 참다시피 해서 돌아왔는데 아이를 안고 5층까지 걸어 올라온 남편이 먼저 헉헉거리며 방안에 눕는다.


"피곤하지? 피곤하겠다."


평소 안 하던 쇼핑을 따라다니느라 피곤한 남편을 보며 어머니가 묻는다.

그리고는 연이어 눕기 전에 방을 한번 닦아야 한다며 나에게 걸레를 주신다.


'하하 어머니. 오늘 음식 하느라 힘들었던 저와 어머니가 더 피곤하지 잠깐 성묘만 갔다가 계속 누워서 게임만 하던 저분이 더 피곤하시겠어요?!'


차마 이 말을 내뱉지 못하고 웃으며 방안을 걸레로 닦아냈다.


그러자 어머님이 이불을 펴주시고는 새로 산 남편의 옷을 들여다 주시며 말씀하신다.


"이런 재질의 옷들은 손빨래해야 한다.

안 그럼 금방 망가진다."


나는 그 말에 그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웃음만 지어 보인다.


'어머니 손빨래는 무리예요.

저도 회사 다니느라 제옷도 애옷도 손빨래 못하거든요.

그렇다고 애 봐주시는 저희 엄마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더럽고 짜증 나게 하는 회사여도 내가 회사에 다니는 게 다행이라고.

안 그럼 내 성격에 미안해서라도 손빨래했을지도 모를 테니까.




안다.

나 서운하라고 일부러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 어머님 이제까지 나에게 시집 살이라는 걸 한번 시킨 적 없는 좋은 분이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식이 더 안쓰럽고 눈에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을.


우리 엄마가 남편에게 잘해주는 것도 다 나를 생각해서 하시는 것이고 은연중에 했던 엄마 아빠의 말 중에서도 남편을 서운하게 했던 얘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에 담는 대신 이렇게 글로 담기로 했다.


그리고는 진정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엄마한테 더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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