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거림 사이의 작은 고요함
부산에서 알바가 아닌 직장일을 시작하면 높은 확률로 오게 되는 곳.
특히 분야가 IT나 디자인 등등이라면 더욱.
슬슬 다가올 졸업과 취업을 걱정하기 시작한 대학교 3학년 말쯤, 전공 교수님의 소개로 콘텐츠 관련 에이전시에 연습생(?) 같은 것을 하러 들른 것이 나의 센텀시티 첫 방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턴이라 표현하기엔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뉘앙스가 좀 달랐으니 연습생이 적절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주로 머무르던 대학가 주변 옹기종기 모인 자취촌이나,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식당가와 생활용품 마켓들, 한때 꽂혀서 주말마다 집처럼 드나들던 남포동의 패치워크스러운 분위기, 기가 빨려서 자주는 안갔지만 종종 큰 모임이 있으면 가던 서면의 왁자지껄한 밤풍경..
센텀시티에 처음 가서 받은 느낌은 부산에서 지내며 익숙해졌던 그런 동네들의 분위기랑은 또 다른 것이었다. 서울에서 일찍 직장을 구한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구로나 가산 디지털단지에 갔을 때 받은 느낌과 비슷했지 싶다.
최근에는 몇 달간 쉬었던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 부산에서는 여자축구 레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간대가 맞는다면 뚜벅이인 나에게는 장소가 너무 멀고, 장소가 괜찮으면 시간대가 안 맞아서 아예 갈 수가 없고.
그렇게 몇 달을 찾아보고 고민만 하다가 센텀시티에 새로 개설하는 반이 생겼길래, 마침 시간대도 저녁이라 일 마치고 가면 되겠지 싶어서 냉큼 등록했다. 우리 동네는 부산 어디를 가든 오래 걸려서 여기나 다른 곳이나 멀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직장 다니면서 수없이 오가던 동네가 익숙해서 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수업하러 가는 동안은 직장인들 퇴근시간이랑 겹치고, 해가 막 지기 시작할 시간이기도 해서 환승할 때 시끌시끌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10시 가까이 되어서 카페랑 식당들은 슬슬 마감하고 있고, 지하철 배차시간도 길어져서 밤늦은 시간대라는 실감이 났다.
센텀시티는 차 없이 걸어 다니면 건물 사이사이가 멀어서 많이 걸어야 한다. 지하철 출구쪽 백화점이 보일 때까지 15분 정도 멍때리며 걷는 동안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전당, 옛날 직장이 있던 건물들, 구내식당이 특히 맛있었던 KNN 건너편 건물, 지금도 종종 가는 알라딘 중고서점.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빠른 걸음으로 통과하곤 했던 백화점 옆 흡연부스 통로를 지나 지하철역 앞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온 야경은 여전히 조용한 듯 시끄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익은 그 풍경은 한동안 머릿속 구석에 밀어뒀던 기억들을 끌고 나왔다.
한때 비슷한 꿈들을 꾸며 같이 야간 작업 하고 캔커피를 뽑아마시던 친구들,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 그것들이 지금은 내 주변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과 순간들이지만. 널찍한 도로를 하나씩 지나올 때마다 건물 사이 공백과 보도블럭 틈새에 그 흔적들이 하나씩 끼어들어서는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기척을 보내는듯 했다.
그들 중 몇몇은 밤에도 반짝이는 저 간판들처럼 여기에 남아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 있거나, 막차 시간이 다가오는 밤에도 빛나는 빌딩의 창문 한 칸에 머물러 있다.
당시 같은 꿈을 꾸었던 내 이십대 대부분의 날도 마찬가지로 이 야경에 같이 녹아있을테지. 지금의 나는 센텀시티의 간판도 빌딩도 아닌 지나가는 풍경 오브젝트 중 하나이지만, 길을 걸으며 곱씹을 수 있는 조각들이 남아있으니 이 기분이 그리 서글프지는 않다.
보도블럭이 맞물리는 틈새 하나 정도에는 내가 꿈을 꿨던 기억이 묻어있을테니, 같은 길을 다른 시간에 걷는 누군가는 야경에서 내 기척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있어서.